뉘조문완(嫘祖文碗) 11.4*5.4
중국 가서 뉘조문 다완을 구해왔습니다. 누에무늬입니다. 정월 초닷샛날 잠신에게 제사지낼 때에는 술을 사용하지 않고 차를 사용합니다. 차그릇의 누에 무늬는 아주 귀한 것입니다. 신농씨의 따님이시고 황제 헌원의 정비인 서릉부인을 뜻하는 문자이기도 합니다. 문자 "뉘(嫘)는 "밭에서 실을 뽑는 여자"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삼신할매. 바람 할매, 길의 신으로 상여 나갈 때 노제(路祭) 지내는 분이 이 뉘조입니다. 뒷면에는 누에 씨앗을 뿌려 놓은 것 같지 않은가요?
이 그림문자를 중국 학자 송대의
설상공(薛尙功)과 현대의 낙빈기(駱賓基)는 ' 용고(龍
觚)'라고 읽고, 한국 학자들은 뉘조'
嫘祖)'라고 읽는다.
송대 천목 누에 뽕나무 완 (천목잠상완)
송대 천목 뽕나무완 (천목목엽완)
설상공(薛尙功)의 <역대종정이기관지법첩(歷代鐘鼎彛器款識法帖)>에서의 뉘조문.
낙빈기(駱賓基)의 <중국상고사회신론>에서의 뉘조문.
조제(祖祭)
-먼 길 떠날 때 무사함을 위하여
뉘조(嫘祖)는 중국 개국신화에 등장하는 약초와 농사의 신인 신농씨(神農氏)의 8대손인 신농 유망(楡罔)의 딸로, 동이족에서 갈라져 나와 하(夏)나라를 세워 오늘날 한족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황제 헌원(軒轅)의 정비 서릉부인이다. 그는 처음으로 누에를 치고 고치에서 비단을 생산 해내는 방법을 발견하여 양잠의 신으로 불린다. 잠농단에 누에(蠶)신으로 모셔지고 있는 인물이다. 신농은 농사와 의학에 관심이 많아 그의 딸 뉘조에게 누에치기와 양잠을 가르쳐 주었다.
뉘조는 길의 신이라 하여 노신(路神)으로도 불린다. 신농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호남지방에서 노년을 보내면서 여러 가지 풀을 뜯어 맛을 보면서 약초와 독초를 가리고 있을 때, 딸 뉘조와 사위 황제가 호남성에 있는 남악(南嶽) 형산(衡山)을 찾아왔다. 여행 중이었던 뉘조는 더 이상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이곳에서 숨을 거두게 되어 형산 남록에 묻히게 된다. 후세의 사람들은 이 산을 뉘조봉(嫘祖峰)이라 한다.
뉘조는 처음으로 양잠을 가르쳤기 때문에 선잠(先蠶)이라고도 하고, 먼 여행을 즐기다가 여행길에서 죽었기 때문에 도로신(道路神)이라고도 한다.
사기의 <자객열전>에 "조(祖)를 마치고 길에 올랐다.(旣祖就道)" 또, <한서>에 "강릉 북문에서 송별연을 열어 길을 떠나는 사람을 보내다.(祖於江陵北門)" 라는 문장이 있다. 이때의 '조(祖)'는 전별 할 때 지내는 제사이다. 먼 길을 떠날 때 도중의 무사함을 위하여 노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축원하는 것이다. 먼 여행을 떠나는 이에게 술자리를 베풀어 이별하여 보낸다.
길 떠나는 사람을 송별하는 연회, 송별연을 조연(祖宴)이라하고, 초상이 나서 영원히 먼 길을 떠나는 발인(發靷) 전에 영결(永訣)을 고하는 도신(道神)에게 올리는 제사를 "조전(祖奠)"이라한다. 이때의 '조(祖)'는 길의 신 뉘조에 올리는 제사이다.
길 떠남의 안녕을 위하여 모두 누에 신인 잠신(蠶神)에게 제사지내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뉘조를 뽕할메, 바람할메, 삼신할메 등으로 부르고 있다. 이 할메들은 누에와 아침 굶은 시어미처럼 다루기가 어렵다. 바람달인 이월은 영등 할메의 달이다.
축지부(縮地符), 도해월령부(渡海越嶺符)
먼길 떠날 때 길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빠른 시간에 도착하고 싶어서 땅을 좁혀 주는 축지부(縮地符)를 사용하고, 바다를 건너는 것은 생명을 담보로하는 매우 위험한 여행길이며 고개를 넘는 것은 도적이나 강도를 만날 수 있으므로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도해월령부(渡海越嶺符)를 몸에 지니고 여행길을 떠난다.
축지부에는 하늘이 셋이고 땅이 셋이다. 역에는 빨리가는 말이 세마리에 역신(驛神)이 도와 주고 있으며, 도해월령부는 물은 산에서 나오며 물의 신은 용신(龍神)으로 용신의 힘이 받혀주고 있다.
부적의 크기는 길이가 6촌이고 넓이는 1촌 2푼이다.
君子之國 槿域之鄕 飛鳳山下 窈窕松湖 屯屈齋家 書安居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