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원서원(百源書院)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의 길을 걸어간다.
소재지 : 동구 도동 487
달성의 효자 전귀당(全歸堂) 서시립(徐時立, 1578∼1665)은 15세의 나이에 임진왜란시 할머니와 어머니 강씨(康氏)를 모시고 팔공산 삼성암으로 피난하였는데 그의 극진한 효행이 온 고을에 자자하였다. 때마침 정승 오봉(五峰) 이호민(李好閔)이 왕자 태실사(胎室使)로 남행하였다가 달성 효자 서시립의 효행을 듣고 시를 읊고 당호를 전귀당(全歸堂)이라 지어주니 부모에게서 실로 온전히 나서 온전히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가 죽자 조정에서 정려(旌閭)을 내리고 1692년(숙종 18) 전귀당 곁에 백원서원(百源書院)을 세워 그를 향사했으니 백원은 효(孝)가 백행지원(百行之源)이라 함이다.
달성의 효자 서시립의 효행은 達城孝子徐時立
세상사람들은 '그의 어머니와 같다'고 말들 한다. 其孝人稱類厥慈
오늘 우연히 삼성록을 보니, 今日偶看三省錄
효부 며느리에 마땅히 효자 아들이 태어났도다. 有慈如比有兒宜
栗琴軒 流浪之士
백원서원 입구
백원서원의 전귀당 편액
칠곡 송림사 앞에 사는 두계(杜溪) 조화승(曺華承, 1843~1897)은 전귀당에 묵으면서 그 감회를 남겼다.
전귀당에 자면서 宿全歸堂
전귀당의 주인은 인심과 거동이 너그러워 全歸堂裏主儀寬
처음맞는 손님에게도 차별이 없네 對客初無修幅端
지니고 있는 값진 물건은 서적이 있고 長物隨身書籍在
뜬 세상 영화위해 기회를 엿보지 않네 榮名浮世陷機看
누에치고 길쌈하기 마을에서 먼저하고 桑麻里巷崔時早
산사의 종소리에 추은 밤을 깨우치네 鍾磬山庵警夜寒
마음에 부그럼없이 가진 뜻 이룩하고 有志竟成心不怍
지나다 빈손으로 만나도 십분반기네 過逢須罄十分歡
백헌 이경석의 시 현판
서시립의 <전귀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