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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당(竹堂) 이명구(李明求)

둔굴재 2009. 8. 9. 20:27

 

                                 죽당 이명구. 1939년. 둔굴재 소장.

 

豹隱南山霧 鵬搏北海風 표은남산무 붕박북해풍

 

  의성 비안에 살았던 죽당 이명구의 글입니다. "표범은 남산의 안개 속에 숨어 있고 붕새는 북쪽 바다를 치고 난다. (豹隱南山霧 鵬搏北海風)"  글씨도 그런 기개가 넘치는 듯 합니다.

 <주역>에 '군자표변(君子豹變)'이라고 했습니다. 군자는 표범처럼 변한다고 하였습니다.  어린 표범이 자라면서 얼룩 덜룩하던 털이 내면이 충실해지면서 어느 순간 무늬가 짙고 빛나는 모습으로 변한다. 그 변화가 참으로 눈부시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공부를 차곡차곡 열심히 축척하다가 보면 반짝이는 지혜를 갖추게된다. 당장의 눈앞의 일에 얽매여 공부를 소홀히 한다면 문채는 갖추어지지 않고 그저 지저분한 분간안되는 일만 남게 된다.

 유향(劉向)의 <열녀전>에 도답자(陶答子)란 사람이 있었습니다.도답자는 질그릇을 구워 팔면서 명예는 없이 재산을 불렸습니다.그의 아내는 돈벌이에 눈이 먼 남편에게 여러차례 그러지 말라고 간했다. 그러나 남편은 엄청난 부를 축척하여 백대의 수레를 끌고 고향으로 돌아와 금의환향하여 소를 잡고 축하했다. 도답자의 아내는 아이를 안고 울었다. 시어머니는 이런 기쁜날 운다며 그녀를 크게 나무랐다.

 그녀가 대답했다. "남산의 검은 표범은 (玄豹) 안개비가 7일간 내려도 먹이를 찾아 내려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털을 기름지게 해서 무늬를 이루기 위해, 숨어서 해를 멀리하려는 것이지요. 저 개나 돼지를 보십시요.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서 제 몸을 살찌우지만, 앉아서 잡아먹히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나라가 가난한데 집은 부유하니 이것은 재앙의 시작 일 뿐입니다. 저는 어린 아들과 함께 떠나렵니다." 그 후 도답자는 도둑질한 죄로 죽임을 당했다.

 여기에서 '표은(豹隱)'이란 말이 생겼습니다. 이명구의 서예 속의 '남산무표(南山霧豹)", 즉 남산 안개 속에 숨어 있는 표범이야기는 <주역>의 "군자표변(君子豹變)"과 유향의 <열녀전>에서 온 것이다.

 

 

 

             죽당 이명구의 서체본

 

 

 

 

 

 

 

 

 

 

 

 

                                       죽당 이명구의 병풍 글씨 10폭. 

 

 

                  이명구의 글씨.

 

 

                       영천 대창의 <강정>, 퇴계문인이며 임고서원 창건한 노수(盧遂)를 추모하여 광주노씨 후손들이 지은 정자이다

 

 

 

대구시 동구 도동 일직손씨 재실<추보재> 편액.

 

 

                                                                   <죽차묵첩> 20*30 Cm . 둔굴재 소장

 

 

<죽차묵첩>. 몽화(夢華)란 나뭇잎 낙관이 보인다.

 

 

<죽당필첩>

 

 

<죽당필첩> 가정왕복(家政往復)

 

 

<죽당칠첩> 가정왕복

 

 

 

죽당 이명구의 간찰

 

 

 

의성군 비안면 안평동 죄생(罪生) 이명구 疏上  군위 의흥 수북동 박오식에게 보낸 엽서.(1930년)

 

 

 

 

 

 

죽당금(竹堂琴): 죽당 이명구가 사용하던 가야금. (며느리 공금옥여사 소장 전래품)

 

 

 

죽당 이명구의 가야금 뒷면 명문.

 

 

공금옥 여사의 선면작품

 

 

                           왕철 이동규.  33*124 cm. 출전<공자가어>와 <명심보감>. 공자의 말씀, 恭則遠於患(예의를 차리고 행동을 공손히 하면 근심과 재난으로 부터 면할수 있다)

 

 

이명구(李明求 1888~1977)

 

 죽당(竹堂) 이명구(李明求, 1888~1977)는 근대기 의성 비안 출신의 서예가이다. 자는 원대(元大), 호는 죽당(竹堂), 죽차(竹此), 몽화(夢華), 해동려인(海東旅人). 대웅산방(大雄山房) 등이 있다. 본관은 전주, 가산(柯山) 김형모(金瀅模)선생 사사, 17세에 조선서예 전람회에서 차상함. 1937년 일본제국서예전에 특선.

해서는 구양순 운필법과 황자원 결구법을 접합하여 독특한 서체 개발, 특히 해서는 우아함 속에 강경하고 정규하며, 행초는 진법을 쫓아 유려하면서도 골기가 의연하여 운치가 마치 용이 노는 듯하다.

 

  죽당은 아들로 희태(羲泰), 희두(羲斗)를 두었다. 장남 희태는 창원 공금옥(孔金玉, 95, 2018년 현재)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죽당의 맏며느리 공금옥 여사는 서예가 원곡 김기승을 사사하여 작품을 남겼다.

 공금옥여사의 동생 공소옥(孔小玉, 2018년 현재 92세) 여사의 아들 김인환의 아내 제주 고씨 홍자는 전라도 강진 명문가의 경수당(耕叟堂) 고기언(高基彦)의 손녀이다. 경수당의 아들 고성택은 도강김씨 사이에서 아들 교장 고홍채, 고홍봉, 고홍희, 고홍엽(여)이 있고, 해남윤씨 사이에서 고홍남, 고홍심(여), 고홍숙(여), 고홍자(여), 고홍선(高洪先, 국악인)의 5남 4녀가 있다.

 

  강진의 제주 고씨는 예술적인 기질도 있고 학문에도 관심이 있어 처제의 며느리집인 강진까지 내려가서 머무르며 강진의 예술가들과 교제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이 시기의 죽당의 글씨는 글쓰기(書)에서 예술로 넘어가는 시기이다. 해서풍 보다는 다분히 자유분방한 서체가 병풍글씨에서는 느껴진다. 가야금도 이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죽당의 차남 희두의 배우자는 의성 다인에 사는 낙파 김용한(金龍漢)의 현손녀로 세년(世年)의 딸 이순(二純)이다. 아들은 광로(光魯), 창로(昌魯), 탁로(卓魯), 영로(永魯)가 있다. 다인 사부테 사돈집을 거점으로 출입하면서 낙파공의 사위 장현문(張現文), 조현(祖顯), 석년(晳年), 창년(昶年), 욱년(旭年), 준일(俊鎰), 녹일(祿鎰)등이 제자이다.  창년의 며느리, 원일(源鎰)의 아내 함창인 김점년(金占年)은 아호가 경연(庚延)으로 지금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경수당 고기언의 후손 국악인 청가 고홍선이 대구에 살면서 누님 고홍자를 통하여 죽당 병풍과 가야금을 전해 받았다. 낙파 김용한의 현손 김부일이 고문헌에 관심을 갖고 의성서도의 맥이 죽당으로 부터 시작됨을 알고 ‘죽당선생 유작전’을 열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연하게 청가가 소장하고 있는 죽당의 병풍과 가야금을 보면서 이런 사정을 알게 되어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

 

  의성지역의 후학으로는 李仁錫, 南炳植, 金孝柱, 孫南鎭, 張在秀, 旺哲 李東圭, 李重憲 등이 있으며 ‘문소서도회’가 그 필맥을 이어 가고 있다. 이 외에도 영천 대창 광주노씨 집안의 육농(恧農) 노치용(盧治容. 1892~1960)외에 제자들은 盧在瑾, 盧圭學, 盧在允, 盧在澈, 盧在環 등이 가르침을 받았다.

 

 

  본가는 태강정사(台崗精舍)라 편액하였으며, 유택은 경기도 일산공원묘지에 있으며 서비는 벼루에 먹을 형상화하였으며 비문은 문하생 이중헌이 짓고 썼다. 작품은 다인에 <괴정 정휘 묘갈명>, 비안에 <병호충렬사유허비>, <수월당>, <오동정>, <병산정>, 대구 도동 일직손씨 <추원재>, 예천 우망의 <만송정>, 영천 대창의 <강정> 편액 등과 서첩으로 <죽차묵첩(1971)>, <간독첩>, <천자문>, <서체본> 3~4종이 전한다.

 

                                                                                                  둔굴재 서와(書窩)에서

 

 

대표제자들의 약력

- 김효주(金孝柱)

 

- 이동규(李東奎, 1918~2002): 호는 왕철(旺哲). 단북초등학교에서 교직생활 시작하여 교직에 43년간 근무, 현재 남아있는 휘호물은 박정희대통령순시기념비(경북영일), 대구직할시민 헌장비문(대구두류공원), 영남제일관복원기념비(대구망우공원), 문소루 복원기념비, 신암 선열공원 단충각 현판, 애국지사 정충환선생 묘비, 고모령 노래비(대구망우공원), 금호대교(서대구고속도로출구), 대구시청, 경북여자고등학교 등 이루 셀 수 없이 많다.  

 

 

- 장재수(張在秀, 1919~1994): 자는 봉서(鳳瑞), 호는 국정(菊庭), 본관 순천. 비안향교 전교. 안계중학교 한문, 국어선생.

 

- 이중헌(李重憲): 경주인. 호는 효천(曉泉). 의성문화원장. 작품으로는 <죽당이명구선생서비>. <관수루> 편액. <대제지유허비>. <효사재이탁영유허비>. <비안향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