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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현경太玄經

둔굴재 2010. 8. 14. 11:53

태현경(太玄經)

                                   태현경 1875년판본. 둔굴재 소장

 

   태현경은 중국 한나라의 양웅이 지은 역서로 <주역>에 비겨 우주 만물의 근원을 논하고 주역의 음양이론 대신에 시(始). 중(中). 종(終)의 삼원론으로 설명하고 이것에 역법을 가미하였다. 태현경은 10권으로 되어 있다.

 양웅(楊雄, 기원전 53 ~ 기원후 18) 자는 자운(子雲)이요, 촉군(蜀郡) 성도(成都 : 지금의 사천성 성도) 사람이며 전한(前漢) 선제(宣帝) 때 사람이다. 같은 고향 출신으로 한 무제(漢武帝) 때 이름을 드날린 사마상여(司馬相如)에게 짙은 영향을 받았다.

 장독덮개(覆瓿)란 가치가 없는 저작을 가르키며, 주로 자신의 저작에 대하여 겸양의 말로 쓰인다. 한나라의 유흠이 양웅의 태현경을 두고 후세 사람들이 장독덥개로나 쓸것이라고 풍자한데서 유래한다. 양웅이 죽고나자 태현경은 세상에서 귀히 여겨지는 저술이 되어 낙양의 종이 값을 올렸다.

 그후 조선의 허균(許筠, 1569~1618)은 살아서 자신의 문집을 내면서 성소부부고(惺所覆瓿稿)라 하였다. 성소는 허균의 호이다.

 양웅은 태현경 말고도 <축빈부(逐貧賦)>를 지어, 지긋지긋한 가난을 쫓아내기 위하여 축빈부를 지었다. 먼저 가난을 불러내어 내 인생을 이렇게 고달프게하는 이유를 묻고, 잠시도 나를 가만두지 않고 따라다니는 까닦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곧 지체하지 말고 썩 물러가라고 호통을 친다. 그러나 오히려 "가난"이란 녀석도 물러가는 것은 좋으나 할말은 하고 간다며 반발한다. 추위를 견디고 더위를 참아내는 법을 어려서 부터 가르쳐 주었고, 걸(桀)이나 도척(도척)같은 남의 것을 탐내는 무리를 거들떠 보지 않는 길러주었으며, 사람들은 모두 이런 저런 것으로 둘러 쌓여있는 곳에서 지내나 그대는 홀로 탁 터진 곳에서 살게 하였고, 사람들은 근심하며 지내나 홀로 근심이 없게 하였다. 이런 것 모두가 나의 공로이다. 하면서 "가난"은 눈을 크게 뜨고 일어나 계단을 내려가면서 "내 맹세코 너를 떠나 수양산에 가서 백이 숙제와 함께 지내리라."하는 것이었다. 이에 다급해진 양웅이 잘못을 정중히 사과하며, 다시는 원망치 않을 터이니 내 곁을 떠나지 말아 달라고 만류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虎年吉祥 飛鳳山下 窈窕松湖 屯屈齋家  谷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