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이름
책은 도서라고도 하는데『역경(易經)』에 “황하에서 그림이 나오고, 낙수에서 글이 나왔다.(河出圖 洛出書)”는 기록이 있고,『상서(尙書)』에도 “복희씨가 천하를 통치할 때 황하에서 용마가 나왔는데, 등에 하도(河圖)를 지고 있었고, 신령스런 거북이 낙수에서 나왔는데, 등에 낙서(洛書)를 지고 있었다. 복희씨는 이 그림과 글씨에 근거하여 팔괘(八卦)를 그렸고, 이것이 훗날의 『역경』이 되었다.”에서 거북이 껍데기(龜甲)으로 발전하여 인류 최초의 도서가 만들어 졌다. 책을 독서하고 보관하는 서재 이름은 다양하게 불러진다.
공벽(孔壁), 규실(奎室), 규한(奎翰), 규장(奎章), 규벽(奎壁), 난대(蘭臺), 노벽(魯壁), 대유(大酉), 동벽(東壁), 묵장(墨莊), 삽가(揷架), 서굴(書窟), 서관(書館), 서급(書笈), 서록(書簏), 서루(書樓), 서림(書林), 서방(書房), 서사(書肆), 서소(書巢), 서실(書室), 서와(書窩), 서옥(書屋), 서장(書藏), 서재(書齋), 서주(書廚), 서창(書倉), 서포(書圃), 소유(小酉), 운각(芸閣), 운창(芸窓), 이유(二酉) 등이 모두 서재를 말한다.
공벽(孔壁)과 노벽(魯壁)은 서한(西漢)의 경제(景帝 , B.C.179~B.C.141) 때 노나라 공왕(恭王)이 공자의 옛집을 철거하는 과정에 벽속에서 한 무더기의 죽간을 발견하였는데, 모두가 유가의 경전이었다. 이것들은 공자의 8대손인 공부(孔鮒)가 진시황의 분서를 피해 숨겨둔 것이었다. 노나라 공자집의 담이란 뜻으로 서재를 뜻하고, 규실(奎室), 규한(奎翰), 규장(奎章), 규벽(奎壁)의 규는 이십팔수의 하나로 서쪽 하늘에 있는 16개의별을 이른다. 이 별은 문장을 주관한다는 데서 뜻이 전용 되었고, 난대(蘭臺)는 한나라 궁궐에 있었던 장서실이고, 대유(大酉)소유(小酉) 이유(二酉)는 대유와 소유 두 산으로 중국 호남성(湖南省)에 있다. 이 산에 있는 동굴에는 천 권의 서적이 보관되어 있다고 전한다. 후에는 장서가 많은 것을 비유하고, 동벽(東壁)은 벼슬을 하여 관리가 모여 앉을 때 좌석의 동쪽에 있는 벼슬로 곧 의정부의 좌참찬(左參贊), 홍문관(弘文館)의 응교(應敎)와 부응교(副應敎), 통례원(通禮院)의 인의(引儀) 등을 말하는데 선비의 벼슬이라 서재로 전용되었다.
운각(芸閣)은 조선시대 경적(經籍)의 인쇄와 교정 · 향축(香祝) · 인전(印篆) 등을 맡아 보던 관청이었다. 서급(書笈)은 문서나 책을 넣어 등에 지도록 만든 상자(箱子), 건연(巾衍)은 천을 바른 서상(書箱), 부급종사(負芨從師)는 책상자를 지고 스승을 쫓는다는 뜻으로 먼 곳에 유학하는 것을 이른다.
서소(책 둥우리) 김종휴의 문집. 둔굴재 소장.
조선시대의 김종휴(金宗烋, 1783~1866)는 아호가 서소(書巢)이다. 부친 성균관 전적을 지낸 김상온(金相溫)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균관 전적이란 벼슬은 유생들이 학문하는 성균관에서 서적과 문서를 관리하는 직책이다.
서소란 책둥우리란 뜻으로 책들이 많아서 서재가 비좁아 앉은 자리의 사방으로 책들이 둘러져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되려면 책읽기를 좋아하고 책을 수집하는 것이 미쳐있어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 다른 사람에게 책 둥우리라고 불리고 싶어 서소라고 하였다. 아버지는 성균관 전적이고 아들은 서소라 불리는 분이니 이집에는 수많은 책들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고서가 흔한 나라도 없다. 몇 백년 된 것은 세상에 그냥 다닌다. 우리의 선조는 글을 좋아하여 사소한 것들도 전부 기록으로 남기고 전적과 도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