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약집설(博約集說)
박약은 《논어》 자한편에 안연이 공자의 가르침에 대해서 “문으로 나를 넓혀주시고, 예로써 나를 요약해 주셨다. (博我以文 約我以禮)”고 하였다. 박(博)은 학문의 세계를 넓히는 것이고, 약約는 학문의 깊이를 의미한다. 공자의 가르침을 받은 안회을 대표하는 말이다. 안회는 공자 다음의 성현으로 연국복성공(兗國復聖公)으로 당 태종 때부터 문묘에 배향되었다.
박약집설은 이민환이 안회(顔回)에 대한 기록을 모아 편찬했다. 안회는 공자(孔子)의 수제자였으나, 요절함으로써 저술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언행을 정리하고자《논어》《주역》《맹자》《예기》《가어家語》 등에 보이는 그의 어록과 주석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책머리에 1635년(인조 13)에 쓴 저자의 서문이 있고, 책 끝에 1641년(인조 19)에 이광정(李光庭)이 쓴 발(跋)이 있다.
박약집설(博約集說)
안회(顔回, 기원전 521년~기원전 491년)는 중국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이다. 자는 자연(子淵)이다. 자를 따서 안연이라고도 부른다. 학덕이 높고 재질이 뛰어나 공자의 가장 촉망받는 제자였다. 그러나 공자보다 먼저 죽으니 “아!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였구나!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였구나!”하고 공자는 탄식하였다.
빈곤하고 불우하였으나 개의치 않고 성내거나 잘못한 일이 없었다. “어질다 안회여!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음료로 누추한 시골에 있는 것을 딴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뎌내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변치 않으니, 어질다, 안회여!”하고 공자는 칭찬하였다. 그러므로 공자 다음가는 성인으로 받들어졌다. 그래서 안자라고 높여 부르기도 한다.
안연은 공자의 도는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며, 바라봄에 앞에 있더니 홀연히 뒤에 있도다. 부자께서 차근차근히 사람을 잘 이끄시어 문으로써 나의 지식을 넓혀주시고(博我以文) 예로써 나의 행동을 요약하게(約我以禮) 해주셨다.
공부를 그만두고자 해도 그만 둘 수가 없어 이미 나의 재주를 다하니, 부자의 도가 내 앞에 우뚝 서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그를 다르고자 하나 어디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하였다.
그러나 학문이 높고 성인 다음으로 성인에 추앙되지만 그의 글이 여기 저기 단편적으로 남아 있으니 자암 이민환이 한권의 책으로 묶어 《박약집설》이라 하였다.
둔굴재 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