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치(臨淄)의 공자문소처 (孔子聞韶處)
임치(臨淄)는 치수(淄水) 옆에 있는 도시이다. 치수는 중국 산동성 래무현(萊蕪縣)에서 발원하여 황하로 흘러 들어간다. 치수의 물빛은 이름처럼 검은 빛이었다. 치수에는 가물치가 많아서 긴 대나무 장대로 뜰채를 만들어 가물치가 수면 위로 나오기를 기다리는 어부들이 여러명 보였다. 전통적으로 노(魯)나라는 물고기가 맛이 있는 곳이다.
신라 경덕왕 16년(757)부터 고려 태조 12년(929)년 홍술장군이 장렬히 전사하기 까지 의성은 “문소(聞韶)”라고 했다. 문소루가 있는 구봉산(九峰山)도 원래는 구성산(九成山)이었다. 문소란 ‘소(韶) 음악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뜻이고, "구성(九成)"은 아홉개의 단락을 의미하는데, 고대 소악의 구성형식이다. 소음악은 성군인 순(舜) 임금이 요임금의 미덕을 능히 계승할 수 있음을 노래한 것이다. 소음악은 지극히 아름답고 또 지극히 좋으니, 음악으로서 이보다 더한 것이 없다하였으니 공자 시대의 고전 음악이다.
공자는 망명하는 노나라 소공(昭公)을 따라 문화국인 제나라에 갔습니다. 기원전 517년, 즉 공자 나이 36세 때에 이곳에서 머물면서 공자는 성왕(聖王) 순(舜)이 만든 <소(韶> 음악을 듣고 마음이 소 음악을 따라가서 오랫동안 고기 맛을 모르시고 다른 풍악은 듣지 않을 정도로 소 음악에 몰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자는 다음과 같이 술회합니다.
“음악의 즐거움이 이렇게 심오할 줄은 몰랐다.”(子이 在齊聞韶하시고 三月을 不知肉味하사 曰不圖爲樂之至於斯也오라.)
공자가 살았던 노나라에는 <소>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제나라에서 처음으로 <소>를 들었던 것입니다. 제나라에 <소>가 전해진 이유는 순의 후예인 진(陳)나라 일족이 제나라로 망명했기 때문입니다.
천하를 선양받은 순임금은 요임금을 이어 훌륭한 정치를 이룩하였으니, 그 음악은 지극히 목가적이고 아름답다. 순임금의 덕은 천성대로 한 것이요, 또 읍(揖)하고 사양함으로써 천하를 얻었다. 이에 공자는 소악을 평하시기를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좋다.(盡美矣요 又盡善也라)” 라하였다. 우리는 공자를 도덕 군자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인생 경험에서 얻은 예술가로서도 보아야 할 것이다.
혼자 찾아 온 공자문소처에서 본 소원촌(韶院村) 마을 안길은 조용했다.
임치의 비오는 치(淄)강에서 낚시하는 모습
공자가 소(韶)음악을 들었다는 곳
중국 산동성 임치 소원촌(韶院村)에는 "孔子聞韶處(공자가 소악을 들은 곳)"라는 글씨가 새겨진 비석이 있다. 청대 가경(嘉慶) 연간에 산동성 쯔보시(淄博市) 린쯔고성(臨淄古城) 동남쪽 사오위안촌(韶院村) 에서 비석이 하나 출토되었는데, 그 비석에 "공자문소처"이라고 새겨져 있었고, 동시에 석경 여러 매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그 비석은 잃어버렸고 다시 그것을 본떠 글자를 새긴 비석을 세웠다. 이 비석은 1911년(선통 3) 에 고을의 학생 풍경욱(馮慶煜)이 글씨를 쓰고 려장동(閭莊仝)이 소원촌에 전해 오는 이야기가 없어질 것을 염려하여 비석에 새겨두었다. 어떤 사람이 음악을 들었던 일이 비석이 새겨진 경우는 유일할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소(韶)"음악을 연주하면 봉황이 날아왔다고하니, 그 길함과 장중함과 화려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호화로운 음악에 "소소구성(簫韶九成), 봉황래의(鳳凰來儀, 소악을 연주하자 봉황이 날아들어 춤을 추었다)"라고 <서경> 익직(益稷)은 적고 있다. '구성'이란 아홉개의 단락을 의미하는데. 이는 고대 음악의 구성형식이다. 새로이 재현된 소악의 연주장소는 임치에 있는 '제국역사박물관'이다.
연주에 사용되는 악기는 대편종. 경쇠.훈(壎). 적(笛) 소(簫). 배소(排簫). 고금(古琴). 쟁(箏). 목어(木魚). 북이 있다. 이 악기들이 서로 어우러져 소리를 내면 "금(金).석(石). 토(土). 목(木). 사(絲). 혁(革). 포(匏). 죽(竹)"이라는 고대음악의 팔음 편제에 맞다.
산동가무극원 유원(劉源)편곡 <소악> CD와 중화고금학회이사장 원중평(袁中平)의 고금연주CD
君子之國 槿域之鄕 飛鳳山下 窈窕松湖 屯屈齋家 書居然子
원중평(袁中平)의 자는 목여(穆如), 호는 중도인(中道人), 청명금재주(淸明琴齋主), 희헌(曦軒), 동촌선생(東村先生)이다. 대북에서 태어났으며, 대북 손민근(孫敏芹)과 소주 오조기(吳兆基)선생에게 금(琴)을 배웠으며 겸해서 기공과 태극권도 익혔다. 서도는 장융연(張隆延)을 선생으로 삼았다. 대만 남화대학 민족음악계 고금 부교수이며, 산동 청도대학 음악학원 고금연구실 주임교수이다.
논금도(論琴道)
夫琴 心聲也. 琴之妙道, 意境爲上, 神韻次之. 琴之趣在自然.. 緩, 急二字, 乃琴家妙訣.
- 丙戌 中秋 淸明琴齋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