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의 <죽지사>
중국 삼협(三峽) 백제성(白帝城) 죽지사(竹枝詞) 비원(碑園)에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의 <죽지사(竹枝詞)>가 석각되어 있다. <백제성죽지사비원(白帝城竹枝詞碑園)> 도서에는 저자가 성씨사(成氏詞)이며 조선인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내용을 보니 허난설헌의 작품으로 7언 절구 4수 중 2번째 련이 석각되어 있다. 글씨는 심붕(沈鵬, 1931~ 현재)이란 서예가가 썼다.
백제성은 한의 공손술(工孫述)이 흰용을 보고 스스로 백제라 하며 성을 쌓기 시작했다. 역대로 유명한 시인들인 이백, 두보, 백거이, 유우석, 소식, 황정견, 범성대, 육우 등 백제성과 기문(虁門)을 유람하면서 주옥같은 시문을 남겼다. 그 때문에 백제성을 "시의 도시(詩城)"이라고도 한다. 그곳에 조선의 여자 문인 허난설헌이 당당히 어깨를 겨루고 있다. 중국인들이 정확한 작가 이름을 몰랐던 모양이다.
허난설헌의 <죽지사> 석각, 심붕(沈鵬)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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瀼東瀼西春水長 양동양서에는 봄물이 넘쳐나고
郎舟去歲向瞿塘 님 실은 배는 작년에 구당으로 떠났어라
巴江峽裏猿啼苦 파강 골짜기에서 원숭이는 괴롭게 울어대는데
不到三聲已斷腸 세마디도 못 듣고 이 내 간장이 끊어지는구나
허난설헌(1563~1589)은 강릉 초당리에서 경상감사 허엽(許曄)과 김씨부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누이이다.
이태백의 <早發白帝城>, 68*130Cm
早發白帝城 이백
朝辭白帝彩雲間 아침 일찍 오색구름 감도는 백제성을 이별하고
千里江陵一日還 천리길 강릉을 하루만에 돌아왔네
兩岸猿聲啼不住 강기슭 원숭이들 울음소리 그치질 않는데
輕舟已過萬重山 가벼운 배는 만겹의 산을 지나왔다네
이백은 만년에 영왕(永王) 이린(李璘)의 거병에 가담하였는데, 이린의 거사가 실패하자 그도 체포되어 지금의 귀주성(貴州省) 서북부의 야랑(夜郞)으로 유배되었다. 야랑으로 가는 도중에 백제성(白帝城)을 지나면서 이백은 자신의 사면 소식을 접하였고, 자유의 몸이 되어 강릉으로 돌아가면서 이 시를 지었다.
백제성에 있는 주자의 글. 유정안(劉貞安) 서. 190*37Cm. 둔굴재 소장
노신(魯迅)의 스승 수경오(壽鏡吾)가 운영하던 삼미서옥(三味書屋)의 삼미는 “베옷도 따뜻하고, 나물 뿌리도 향기로우며, 시서의 재미는 유장하다. (布衣暖 菜根香 詩書滋味長)” 는 주자의 명언에서 나온 것이다. 관지는 "유정안( 劉貞安)이 가을이 깊어가는 9월 밤에 등불을 켜고 글을 써서 제자 장대일에게 돌에 각을 하게하여 백제사에 두게하였다." (乙丑九月夜燈偶書 俾問人張大一刻石置白帝祠中, 劉貞安.)하는 내용이다.
이 자료는 2012년 7월 4일 칭따오의 팔금산 김덕기 사장과 부산 아산학회 김홍일 회장이 삼협 여행를 하고 선물로 사온 자료들입니다.
夜燈偶書에 屯屈齋는 기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