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월의 <조선부>
한글 번역본<조선부>. 1994
<조선부> 둔굴재 삽가기
《조선부(朝鮮賦)》는 태두남이 1531(중종 26)년 남원도호부사로 있으면서 전라관찰사 소세양(蘇世讓)이 갖고 있는 명나라 동월(董越)의 <조선부>를 보고 널리 전파되지 못함을 근심하였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풍토와 문물의 성대함을 모두 바르게 채집하였다고는 할 수 없으나 우리나라가 중국에 대하여 정성을 다하였고 중국이 우리나라를 존중 예우한 성의를 볼 수 있었다. 문장의 아름다움은 시경의 문체에 방불하였으며 천년 뒷날 까지 고무 진작시킬만하였다. 드디어 1531년 인쇄하여 대방군(帶方郡: 남원)에 보관하도록 하였다.
1487년(성종18) 명나라 헌종이 죽고 효종이 즉위하였다. 명나라에서는 효종의 즉위 사실을 알리기 위해 조선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이듬해(성종 19, 홍치 1년) 1월 새 황제의 등극을 알리는 조서를 받들고 조선을 찾아 온 정사 동월(董越)과 부사 왕창(王敞)이었다. 동월은 조선을 왔다 가면서 1490년에 조선에서 얻은 각종 견문과 감회를 정리 편찬하였다.
《조선부》는 조선에 관한 정통사료이자 사행록의 모범으로 인정되어 수종의 판본이 간행된 듯하지만 현재는 간행년도가 불분명한 명대의 간본과 <국조전고(國朝典故)>본, 청대의 문연각(文淵閣) <사고전서>본, 1915년 남창득로(南昌得盧)에서 간행한 판본 등이 전해진다. 한국에서도 다수의 판본이 간행되었는데, 규장각에서 갑진자로 인출된 활자본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 한성부조 판본, 1531(중종 26)년 소세양 소장본을 대본으로 태두남이 남원에서 간행한 것이 있다. 그리고 조선사편수회에서 1937년 소수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남원본을 대본으로 간행한 300부 한정 영인했다.
일본에서도 조선사편수회 영인본의 해제에서 경성제국대학교에서 고활자본을 대출하고, 등총린(藤塚麟)에게서 남원본을 빌려 교간하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1994년 까치출판사에서 한글번역본이 있다. 번역자 윤호진은 소수서원에 보관되어 있던 태두남이 남원에서 간행한 영인본을 참고하였다. 남원본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은 귀중한《조선부》보급이 널리 이루어지게 되었다. 번역본은 부록으로 남원본과 사고전서본의 원문을 영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