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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신, 비렴(飛廉)

둔굴재 2012. 9. 8. 19:02

    바람의 신, 비렴(飛廉)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의 길을 걸어간다.                               

 

 

 

  중국 공자가 살던 마을을 궁궐과 동일시 하여 "궁궐마을"이라는 뜻의 궐리(闕里)라고 한다. 화려하지 않고 청빈한 소박한 집인 궐리빈사(闕里賓舍)이다. 이 빈사 로비에 바람의 신인 비렴(飛廉)상이 있다. 이 비렴상은 1977년 호북성 수주시(隨州市) 증후을묘(曾侯乙墓)에서 초혜왕 56년(기원전 433년)경의 청동 비렴이 발견되었다. 날개에 "曾侯乙作之用終"이란 명문이 있다. 전국시대 초나라의 부용(附庸) 소국이었던 증(曾)나라의 군주 을(乙)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이 무덤에서 대량의 청동기, 옥기, 칠기가 쏟아졌다. 3단에 65개의 편종과 비렴상, 피장자의 내관은 모두 옻칠을 하였다. 비렴상은 봉황의 모습이었다.

  비렴은 본시 바람으로 풍(風), 붕(鵬), 봉(鳳)은 모두 바람을 뜻하는 같은 음역이다. 고대사회에서 인간은 이 우주에서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바람과 물뿐이란 것을 알았다. 바람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바람을 그리는 것은 어려운 일로서 조금씩 형상화하다가 보니 봉황이라는 영험한 짐승이 된 것이다. 그래서 봉황은 바람의 신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 고대민족 동이족은 바람의 민족으로 새로 관직 이름을 정하였다. 마을 앞의 솟대는 새에 관계되며,  지금도 대통령의 휘장은 바람의 신, 봉황이다. 우리나라에 비봉산이란 산 이름이 많은 것도 새의 민족이기 때문이다.               

                                                                                             - 둔굴재의 생각.

 

                                       증후을묘(曾侯乙墓)의 비렴(飛廉)상

 

                                     궐리빈사(闕里賓舍)

 

                                                     증후을묘진상. 호북성박물관. 1995

 


증후을묘의 편종 . 2018. 7. 20일 필자 직접 촬영.

 

  증후을묘에서 발견된 편종은 모두 65개로 상층에 19개 중층에 33개 하층에 13개로 배치되어 있다. 연주에는 최소한 4명의 연주가가 필요하다. 편종과 기둥에 명문 3,755자가 적혀 있어 악기이면서 음악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