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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승리자 박열

둔굴재 2012. 10. 13. 11:53

                             운명의 승리자 박열

 

<신조선혁명론>1948년. <운명의 승리자 박열> 1946년.  일본어판. 둔굴재 소장.

 

  <운명의 승리자 박열>의 저자중 한명인 후세 다쓰지(布施辰治. 1880~1993)는 일본인 변호사로써 조선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또한 조선건국헌법초안을 만들기도 하였다. 2004년 일본인 최초로 우리정부로 부터 건국훈장을 받은 사람이다.  

 박열(朴烈. 1902~1974)은 "최악의 불령선인(不逞鮮人. 불온한 조선사람)"으로 불리며 일본의 한국 강점에 항거한 독립의사로 문경 마성면 오천리 샘골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박준식으로 함창국민학교 3회 졸업생이다. 18세 때인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과 메이지 대학을 고학으로 다니며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바탕으로 조선 독립을 위한 저항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1923년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의 와중에 아나키스트 박열(朴烈)은 효당 최범술(崔凡述. 1904~1979)과 함께 일본 천황 부자와 일본 각료들을 폭사시키기 위해 황태자 히로히토(裕仁)의 결혼식장에 폭탄을 투척하려 한 소위 ‘대역사건(大逆事件)’을 계획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무기로 감형되어 22년 3개월의 옥살이를 했다. 박의사 구속 때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여사도 함께 구속되었으나 일본의 회유 공작에 저항해 임신 상태에서 자살했다. <신조선혁명론>은 의사 박열의 유일한 저서이다.

  박의사는 광복후 초대 재일거류민단장을 역임하고 1949년 귀국해 신조선건설동맹위원장을 맡았으며 6.25전쟁 당시 납북되어 북한의 혁명열사릉에 묻혔다.  2012년 10월 9일 고향에 "박열의사 기념관"을 개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