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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록

둔굴재 2012. 11. 2. 21:43

                   정만록(征蠻錄)

 

 

 

                                  조선학보 76호(1975. 7)의 <용사일록>, 조선학보 77호(1975. 10)의 <정만록>.

 

 

 

                                         <효사재선생 정만록(1959)> 

 

 

 

 

                                         조선학보 제 76호, 제 77호와 정만록(의성문화원, 1987), 정만록(의성군, 2002)

정만록(경도대학 복사본), 용사일기(천리대학 복사본).   제첨 율산 리홍재

정만록

  임진왜란은 조선 선조 25년(1592)에서 선조 31년(1599) 까지 일본의 조선 침략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조선의 선비는 많은 기록을 남겼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이순신의 난중일기, 정탁의 용사일기, 유성룡의 징비록, 조정의 진사일록, 이탁영의 정만록 등이다.

 

  정만록의 일기 서두에는 임진변생후일록으로 되어 있으나 전쟁이 끝난 후 영남지방의 전쟁 사적을 채집할 때 정만록을 수찬청에 제출하니 선조가 정만록이라 하라 하였다.

 

  정만록 원본은 건곤 2책으로 23.5*31.7Cm이다. 건권은 149쪽, 곤권은 186쪽으로 당시 공문서로 사용한 딱종이의 이면을 이용하여 기록한 필사본이다. 현재는 원고본 1질만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탁영의 2자 이정훈(李廷薰)이 선고의 유사등을 기록한 <둔산기사(芚山記事)>에 서평대감(西平大監)의 지시에 따라 수산청에 제출하고도 본가에 소장한다하였고, 경상감영의 봉계(封啓)에 감영에 수장하고 있다 한 것으로 보아서 적어도 3질은 작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후손들이 정만록과 계하정만록을 구분하는 개념은 2질 중 수찬청(修撰廳)에서 환송한 것을 계하정만록이라 부른 까닭이다.

일제 강점기에 경찰에 압류당하였다가 반환되는 과정에서 2질 중 1질이 유실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만록의 출판은 현재까지 모두 5번 출판되었다. 첫 번째로 1959년 효사재선생정만록의 제목으로 석판 한적본 6권 3책으로 오침장정 간행하였고, 1987년 활자본 4*6배판 214쪽으로 간행하였고, 1992년 의성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남전(藍田) 이호응(李虎應) 역주로 신국판 485쪽 500부 간행하였고, 2000년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임진왜란 총서(문학)에 수록하였으며, 2002년 의성군에서 간행하였다.

 

『정만록』에 대한 일본에서의 연구도 활발하여 다음 2종의 영인본이 간행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 이마니시(今西龍)과 가와이(河合)는 조선의 고서 두권을 수집 해 갔다. 지금은 천리대학과 경도 대학에 각각 보관하여 조선학보에 소개하고 있다.

 

  천리대학도서관 이마니시(今西)문고 소장『용사일록』1책을 조선학보 제76집에 영인 수록하면서 ‘이탁영록(李擢英錄)’이라고 하였다. 이 책은 108쪽으로 ‘금서룡도서(今西龍圖書)’ 인장이 첫 페이지에 찍혀 있다. 이 책은 목차없이 일기를 적었다.

 

  경도(京都)대학 도서관 가와이(河合)문고 소장『정만록』은 건곤 2책으로 합하여 116쪽이다.『조선학보』제77집에 영인 수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