輓故室貞夫人鄭氏 돌아가신 정부인 정씨에 대한 만시
白馬寒嘶關北去 군마는 차갑게 울면서 관북으로 떠나는데
丹旌遙向嶺南歸 붉은 명정은 멀리 고향 영남으로 돌아가네
塞雲萬里多風雪 변방의 구름은 만리 길에 눈 바람도 많을건데
誰億征人寄遠衣 누구가 나를 생각해 멀리 옷을 부쳐줄까
* 명정(銘旌): 장례 때 죽은 사람의 신분을 밝히기 위해 품계, 관직, 성씨 등을 기재하여 상여 앞에서 길을 인도하고 하관(下棺)이 끝난 뒤에는 관 위에 씌워서 묻는 명기.
박성양의 < 금은 선생 실기>
의성에 살았던 박성양(朴成陽)의 호는 금은(琴隱)이며 함양인이다. 조정에서 관북지방의 야인들 침입이 잦아서 공을 함경도북영병마사로 발령하였는데, 부임하기도 전에 부인이 서울 집에서 하세(下世)하여 고향으로 반장(返葬)하는데 만시를 지었다.
임금이 북쪽의 야인들을 정벌하라고 내린 백마는 찬바람 부는 북쪽으로 떠나자고 울고 , 붉은 천에 쓴 아내 정부인 정씨의 명정은 고향 길이 멀다고 돌아서서 가는구나. 북쪽 변방 만리에는 차가운 눈 바람이 거칠게 불어오는데, 어느 여인이 임금의 명령으로 야인 정벌에 나선 이사람을 위하여 따뜻한 솜 옷을 만들어 보내오리오. 옛날의 여인들은 날이 추워지면 솜대신 종이를 두어서 만든 지의(紙衣)을 만들어 병사들의 속옷을 만들어 보내는 관습이 있었다. 변방을 지키기 위하여 멀리 집 떠나 간 남편을 위하여 정성스레 옷을 만들어 보내며 자신의 사랑을 은근히 표현하였다. 자신이 만든 옷을 입는다는 것은 자신의 사랑으로 남편을 보호한다는 의미이다. 그 중에서도 솜 옷을 하는 이유는 언제까지나 잊지 않고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솜(綿)은 면면(綿綿)히 언제까지나 사랑이 계속되는 것을 취한 것이다.
- 둔굴재에서 글쓰다.
* [屯說] 참고로 괘편당 이영(李榮, 1494~!563)의 <괘편당실기>에 <挽夫人宋氏>에 동일한 내용의 시문이 있다. 누구의 시문인지 밝힐 필요가 있을 것같다. 혹, 중국 시인이 이와 비슷한 시문을 읊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의견이 있으신 분은 의견 남겨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