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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을 본관(本貫)으로하는 성씨(姓氏)

둔굴재 2013. 8. 25. 10:47

 

의성을 본관(本貫)으로하는 성씨(姓氏)

 

 우리나라의 성씨와 본관제도가 정착된 시기는 신라시대 말기부터 고려시대 초기로 생각된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의 생활은 혈연과 지연으로 서로 얽혀 있게 된다. 성이 바로 부계의 혈통을 나타내면서 시간선상의 끊임없는 연속성을 보여준다면 본관은 어느 한 시대에 정착하였던 조상의 거주지를 나타내는 공간상의 의미가 크다. 즉, 성은 공동의 조상을 나타내는 부계의 핏줄을 뜻하며 본관은 지명으로 표시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성과는 다른 차원에서 성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성은 신라의 3성(朴·昔·金)과 6성(李·崔·鄭·孫·裵·薛)을 비롯하여 진골과 6두품 계층이 비로소 성을 가지게 되었다. 15세기 초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 성씨조항에 의하면 성의 수는 약 250내외이며 본관 수는 현(懸)이상만 하더라도 530여개나 되고 촌락을 본관으로 한 촌성(村姓)과 향(鄕), 소(所), 부곡(部曲), 역(驛)등의 본관까지 합산하면 1500여개가 있었다.

경상도지리지(1452), 세종실록지리지(1454), 동국여지승람(1486), 여지도서(1760), 조선씨족통보(1925), 의성지(1932) 등과 인구조사(1975, 1997)에는 의성지방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우리 의성에 본관을 둔 성씨는 조선시대에는 지금 소개하는 숫자보다 훨씬 많은 40여개 이상 일 것으로 생각된다. 성씨와 본관도 시대에 따라 흥하고 망하는 것이다. 큰 인물이 나면 그 고향을 근거로 본관을 한다. 그 큰 인물과 의성의 성씨를 소개한다.

 

1. 의성 김씨(義城 金氏)

 시조는 석(錫)이며 신라 경순왕의 네째 아들로써 고려 태조의 외손으로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짐으로 해서 의성을 본관으로 하였다.

 

2. 의성 홍씨(義城 洪氏)

 시조는 유(儒:?~936, 태조 19)이며 고려초기의 무장이며 태조 때의 1등 개국공신이며 시호는 충열(忠烈)이며, 태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3. 의성 송씨(義城 宋氏)

 시조는 인창(仁昌)이며 1432년(세종14) 문과에 급제하여 헌납(獻納)을 지냈다. 본관 유래는 알 수 없으며 1985년 정부통계연감에 의하면 인구수는 287명이다.

 

4. 의성 제씨(義城 諸氏)

 원래의 제씨는 본래 제갈(諸葛)씨에서 분종된 성씨로 전한다. 의성 제씨의 시조는 은직(殷職)이며 벼슬이 호장(戶長)이다.

 

5. 의성 오씨(義城 吳氏)

 시조는 영년(永年)이며 찰(札)의 아들로 1497년(연산군 3) 문과에 급제하여 현령을 지냈다. 1985년 정부통계연감에 의하면 인구수는 156명이다.

 

6. 비안 나씨(比安 羅氏)

 나주 나씨에서 분적하였으며, 시조는 준기(俊奇)이며 고려조정에서 사온사(司醞史) 역임했다.

2000년 통계에 의하면 인구수는 786명이다.

 

7. 비안 병산 박씨(比安屛山朴氏)

 월성 박씨 계열로 시조는 우(瑀)이며 신라 박씨의 33세손으로서 고려조정에서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고 벽상공신(壁上功臣)으로 병산군(屛山君)에 봉해졌다. 증손 서생(瑞生)은 문과로 대사헌에 선임되고, 길재(吉再)의 문인이며 <야은언행록(冶隱言行錄)>을 편저하여 청백리로 구천서원에 제향한다.

2003년 통계청조사에 의하면 870가구에 2588명이 살고 있다.

 

8. 비안 원씨(比安袁氏)

 시조는 뇌보(顂輔)로 원씨는 비안원씨 단일본이다.

 

9. 다인 황씨(多仁 黃氏)

 시조는 원철(元哲)이며 고려 공민왕조 1360년에 열린 신동경당시(新東京堂試)에서 문과에 급제하였다. 장원급제한 정몽주와 과거급제 동기이다.

 

10. 안정 나씨(安定 羅氏)

 시조는 천서(天瑞)이며 안정 나씨는 나주 나씨에서 분종되었으며 공민왕때 송참진무(松站鎭撫)로 공로가 있어 비안의 안정현을 식읍으로 받았으며 안천군(安川君)에 봉해져 본관으로 하였다.

 

11. 의성 서씨 (義城 徐氏)

 1985년 통계청조사에 의하면 62가구에 226명으로 확인되나 시조나 본관의 유래는 알 수가 없다.

 

12. 비안 손씨(比安孫氏)

 시조는 손을구(孫乙口)이며 때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북변(北邊)에 침입한 외적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치고 절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 후의 기록은 없어서 조선 세종 때에 도총관을 지내고 비안의 도락촌(道樂村)으로 낙향하여 살아 온 손안무(孫安懋)를 1세 조상으로 하고 있다.

 

 이밖에도 <조선씨족통보>에 의성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강씨(康氏), 방씨(方氏), 장씨(獎氏), 이씨(李氏), 유씨(柳氏), 주씨(朱氏,) 유씨(劉氏), 부씨(夫氏), 예씨(芮氏), 최씨(崔氏), 손씨(孫氏), 변씨(邊氏), 전씨(全氏), 전씨(田氏), 노씨(盧氏,) 표씨(表氏), 심씨(沈氏), 정씨(丁氏), 정씨(鄭氏), 임씨(林氏), 비안에는 소씨(邵氏), 정씨(鄭氏), 황씨(黃氏), 하필참(下筆站:비안지방) 팽씨(彭氏), 물실(勿失:비안지방) 팽씨(彭氏), 안정에는 김씨(金氏), 임씨(任氏), 박씨(朴氏) 등이 보이나 시조나 인구수는 알 수가 없고 관향만 보인다.

 

                                                         압해정씨 의성파 족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