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두한필
두한필(杜漢弼, 1823~1893)의 자는 영여(永汝), 호는 소남(小楠)으로 두릉인이다. 임진왜란때 조선 원군으로 왔다가 귀화한 두사충의 8세손이다. “나이 12살에 어머니 양씨(梁氏)가 병이 나서 눈 가운데서 버섯을 구해 죽을 끓여 드리니 효험이 있었으며, 아버지 돌아가시고 사람들이 고기를 대접하니 눈물 흘리며 받지 않았다. 삼년을 소박하게 식사하니 그 효행에 감복하였다.”고『속수삼강록』과『대구읍지』는 기록하고 있다. 1908년 나라에서 정려(旌閭)를 내렸으며, 통훈대부규장각직각(通訓大夫奎章閣直閣)에 추증되었다.
두희현(杜僖賢, 1852~1932)의 자는 도원(道原), 호는 소명(小明)으로 두릉인이다. 고조부는 두여환(杜如煥)이고 증조부는 증 돈령부도정 두경묵(杜敬黙)이다. 조부는 두형진(杜亨晉)이고 아버지는 두한필(杜漢弼)이다. 9세에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는데 아버지 곁에서 어른과 같이 조문객들을 응대하였다. 임재(臨齋) 서찬규(徐贊奎)의 문인으로 저서로『소명유고』가 있다.
효부 안동김씨
두상현(杜相賢)의 아내이며 두한필의 둘째 며느리이다. 부인은 “집이 매우 가난하여 시어버이 생신을 당하여 머리카락을 자르고 비녀를 팔아 생신 상을 갖추어 드렸다. 시아버지 병이나니 똥을 맛보고 시험하였으며 하늘에 쾌유되기를 빌었다. 행실은『속수삼강록』에 기록이 있으며 1909년 나라에서 정려(旌閭)를 내렸다. 한 집안에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효행으로 정려되었다.
속수삼강록과 대구읍지
소명유고, 모명집, 모명선생유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