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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동과 최치원

둔굴재 2014. 7. 11. 12:15

홍류동과 최치원

 최치원(崔致遠, 857~?)의 이름은 처음부터 멀리 내다보고 지어졌다. 동국의 선생 중의 선생의 이름은 그냥 짓지 않는가 보다. 최치원의 아버지 견일(肩日)의 간절한 소망이 느껴진다. 제갈공명(諸葛孔明)의 <계자명(誡子銘)>에 담박명지(澹泊明志) 영정치원(寧靜致遠)의 한자 숙어로 더 알려진 구절이다. “군자의 행실은 고요함으로 몸을 닦고 검소함으로 몸을 기른다. 담박함이 아니고는 뜻을 밝게 할 수가 없고, 고요함이 아니면 먼 곳까지 이르지 못한다.(夫 君子之行 靜以修身 儉以養德 非澹泊無以明志 非寧靜無以致遠)”에서 '치원(致遠)'의 의미를 갖고왔다. 최치원의 이름은 ‘고요하여야 원대한 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최치원은 죽은 날을 알지 못한다. 시 한 수 가야산 독서당에 걸어놓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세상 사람들은 신선이 되었다고 말한다.

 

題伽倻山讀書堂 가야산 독서당

狂奔疊石吼重巒        첩첩이 쌓인 돌 사이를 미친 듯 달아나며 겹겹의 산봉우리를 울리니,

人語難分咫尺間        사람의 말을 옆에서도 구분하기 어렵다.

常恐是非聲到耳        세상의 시시비비 소리 들릴까 두려워,

故敎流水盡籠山       흐르는 물로 온 산을 감싸 안았다.

 

 가야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붉게 물든 복사꽃잎이 물결 따라 흘러서 홍류동(紅流洞)이라 한다. 최치원이 만년에 가야산에 은거하면서 세상 사람들은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최치원이 신선이 되려면 복사꽃이 붉게 물든 무릉도원이라야 한다. 그래서 홍류동 밑에는 무릉홍교(武陵紅橋)라는 무지개다리가 있었으며 무릉홍교 있는 마을이 무릉동(武陵洞)이다. 조선의 김종직(金宗直. 1431~1492)과 이도현(李道顯. 1726~1776)은 세월이 흘러서도 <홍류동>과 <무릉교>를 시로 읊었다.

 

홍류동(紅流洞)

아홉 굽이 흐르는 물이 우레처럼 격노하고                     九曲飛流激怒雷

무수히 떨어지는 붉은 꽃잎은 물결 따라 내려온다.         落紅無數逐波來

반평생동안 무릉도원의 길을 알지 못하고                      半生不識桃源路

오늘에야 물색의 정을 만났구나.                                   今日應遭物色情

 

무릉교(武陵橋)

어떤 사람이 교각을 만들어 모두 10여 칸이 되는데, 곧 무너지게 되었다.

(有人作橋閣。凡十餘間。將圮。)

 

그림 같은 무지개다리 급한 물결에 비치는데              虹橋如畫蘸驚

다리 위를 지나는 사람 발을 조심하여 가누나             橋上遊人側足過

내가 옷 벗고 물 건너려는 걸 그대는 웃지 마소           我欲揭之君莫笑

고운이 어찌 일찍이 위태로운 길을 밟았던가              孤雲寧蹈畏道麽

 

 홍류동의 붉은 꽃잎이 흘러내리니 홍류동 입구에 무릉교가 있다. 계촌(溪村) 이도현은 “홍류동은 무릉교 위 5리에 있다”고 하였고, “무릉교는 가야산 해인사 입구에 있다”하였다.

 

홍류동(紅流洞)     在武陵橋上五里

山碧林深翠色濃            산은 푸르고 숲이 깊으니 푸른빛이 짙고

上方臺殿白雲封            위쪽으로 대전은 흰 구름으로 막히었네

崔仙一去紅流晩           최 신선은 한번 떠나가니 붉은 복사꽃 늦게 흐르고

高臥何人起懦慵           어느 사람이 게으르고 나약한 세속 벗어난 신선 일으킬까?

 

무릉교(武陵橋)    伽倻山海印寺洞口

虹橋絶壑作山門            무지개다리와 가파른 골짜기는 산문을 만들었고

觸石雷波白日昏            돌에 부딪치는 우뢰같은 물결은 밝은 해를 어둡게 한다

此去桃源知不遠            이곳을 지나면 무릉도원이 멀지 않은 것을 알겠는데

仙流應戒俗人喧            신선이 내려올까 응당 경계하여 속인들은 두렵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강양군(江陽郡)은 본래 백제의 대시산군(大尸山郡)으로 신라가 백제를 멸망한 후 그 지역을 신라의 영토로 하였으며, 조선 태종 때에 합천군(陜川郡)이라 하였다. 가야산은 일명 우두산으로 합천군 야로현 북쪽 삼십리에 있으며 최치원이 일찍이 가족과 함께 이곳에 은거하였으며, 지금도 치원촌(致遠村)이 있으며, 후세의 사람들이 그 이름을 공경하여 치인촌(治仁村)으로 고쳐 부른다.”고 하였다.

 

<점필재집> 권14의 무릉교, 홍류동 부분.  

 

이도현의 <계촌집>

 

<계촌집>의 무릉교, 홍류동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