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을 보는 마음
헌책방을 찾았다. 지난번에 부탁 해둔 국립국악원에서 발행한 <신역 악학궤범>을 찾아 두었는지도 궁금하고 봐둔 책도 있어서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졌다. 헌책가게의 주인은 게을러선지 상술인지 있다있다고만 하고 아직도 찾아놓지 않았다 한다. 서점의 전체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금방 찾을 것 같은데 20여일이 넘었는데 아직도 안 찾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젠 없다고 하는 것이 낳지 않을까 싶다. 가격 흥정하는 것도 아니고... .
언어는 글에 의지하여 전해질수 있다. 먼저 살다 간 사람의 영혼이 머물러 있는 헌:-책을 좋아한다. 부자로 살지 못하는 사람의 즐거움이다. 요사이 엔간한 것은 컴퓨터를 통하여 잠깐잠깐 읽을 수 있으니 굳이 책을 사지 않는 세태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안타까운 것은 혼자만의 일이다.
1956년 평양 국립출판사 북한판 렴정권번역 <악학궤범>, 1979년 고전국역총서 이혜구 번역 <악학궤범>, 2011년도 국립국악원에서 일본 나고야 봉좌문고(蓬左文庫) 영인본 <악학궤범> 등이 있지만, 2010년 <신역 악학궤범>이 지하창고에 있다하여 온 것이다.
내가 단골로 가는 서점은 그래도 대구에서 1층, 3층, 지하층까지 사용하는 큰 규모의 헌책방이다. 퀘퀘한 냄새나는 곳을 이리저리 책들 사이를 넘어서 다니며 약간 어두운 조명아래서 생명력을 잃고 제멋 데로 놓여 있는 책 중에서 골라야 한다. 이름이 있거나 온전한 책들은 그래도 자리를 잡아 책꽂이에 꽂혀있고 대개의 책들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만물은 세월 앞에서는 언젠가는 ‘헌:-것’이 되지만, ‘헌:-것’이란 오래되어 허술하거나, 성하지 못하고 낡은 물건을 말한다. ‘헌:-책’이란 책이 생명력을 갖고 주인을 만났다가 주인에 의해 버려진 것이다. ‘헌:-책방’에서 또 새로운 주인을 만나는 것은 그래도 행운이다. 대개의 ‘헌:-책’들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흙으로 돌아가거나 불태워진다. 우아하게 말하면 귀토(歸土)이고 고종(考終)이다.
기쁜 마음으로 <동방학지(제2집>과 <대학. 중용>, 그리고 완전히 흐트러진 <성리대전서> 파본을 안고 즐거워 할 수 있었다.
<동방학지> 제2집은 1955년 연희대학교 동방학연구소에서 간행하였다. 김상기의 <동이와 추이, 서융에 대하여(하)>, 허웅의 <방점연구>, 고유섭의 <조선탑파의 의식변천>, 방종현의 <계림유사연구>, 이혜구의 <악학궤범역주>의 중요한 연구논문이 있었다. 음악학자 이혜구가 동방학지 제2집에 악학궤범 권1의 역주를 발표한 이듬해 1956년 북한음악학자 렴정권이 악학궤범을 번역하여 간행하였다. 살기 어려운 시절에 백년 후에도 읽어 줄 내용을 담은 책이라 만지면 바스러질듯하지만 연구논문만은 최고이다.
<대학. 중용>은 2000년 학민출판사에서 간행하였다. 학민출판사는 만나기 어려운 원전을 영인하여 보급하는 출판사이다. <대학. 중용>도 경진년에 내각장판(內閣藏板)을 영인한 책이다. 내각장판이란 조선시대 최고의 관청인 의정부에서 간행한 책으로 판본상태가 정밀하다. 이 책은 물론이고 이외에도 여러 가지의 판본이 서재에 있지만 깨끗하고 헐하다고 샀다. 아니 이 좋은 책이 헌:-책방에서 주인을 만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안타까워서 샀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헌:-책방에 다니다보면 이런 일이 숱하다. 책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려고 미리 사 두는 것이다.
<성리대전서>는 명나라 영락제 때 1415년 송나라의 성리학설을 집대성한 책으로 전체 7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구성은 70권 중에 25권이 송대 학자의 중요한 저술을 수록한 것이고, 45권이 주제별로 여러 학자의 학설을 분류, 편집한 것이다.
저술과 그 주석을 수록한 것으로는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太極圖)>와 <통서(通書)>, 장재(張載)의 <서명(西銘)>과 <정몽(正蒙)>, 소옹(邵雍)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주희(朱熹)의 <역학계몽(易學啓蒙)>·<가례(家禮)>·<율려신서(律呂新書)>, 채침(蔡沈)의 <홍범황극내편(洪範皇極內篇)>이 있다.
<성리대전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악학궤범>을 편찬 때 중요한 원전 사료가 <성리대전서>속에 포함되어 있는 채원정(蔡元定)의 <율려신서>이다. <율려신서>라는 음악책이 성리학 책에 포함 된 것은 당시의 음악은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는 성리학으로 본 것이다. 지금과 같이 한 인간의 오락으로 사용해서는 안 되고 마음을 다스리는 학문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오늘 만난 성리대전서는 전부가 아니라 소옹의 <황극경세서>의 상편만이 남아서 해체되어 있다. 종이의 재질과 어미(魚尾)를 보니 임진왜란 이전판본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래도 관물편(觀物編)은 완전히 원문이 살아있다. 한때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서 해독할 수없는 전서(篆書) 붉은 도장이 선명하지만 읽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지만 이젠 불구덩이로 가거나 폐지공장으로 가기 일보직전이다.
서재로 돌아오니 설날 전에 경매 사이트에서 구입한 <정가당문고한적분류목록(靜嘉堂文庫漢籍分類目錄)>이란 책이 도착 해 있다. ◯◯대학 도서관에서 장서 정리하면서 폐기처분한 것으로 대학 도서관의 장서인이 선명하다. 좋아하는 사람의 서재로 오게 되어 다행이다. 각 도서관을 검색해보니 어느 곳에도 장서되어있지 않다. 희열을 느끼기도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이 책은 1930년 일본 정가당문고에서 발간한 도서목록 책이다. 약 1500쪽의 두꺼운 책이다. 정가당(靜嘉堂)은 일본 메이지년간의 이와사키(岩崎) 남작이 고전학문이 우대받지 못하던 시대에 고전적을 수집하여 만든 개인문고이다. 1923년대의 장서가 13만 8천책에 이르렀으며 초대 정가당(靜嘉堂) 문고 사장으로 <한화대사전> 13권을 만든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석학 모로하시 데츠지(諸橋轍次. 1883~1982)이다.
정가당은 청나라말 4대장서가의 한사람인 육심원(陸深源)의 벽송원(皕宋園) 장서 15만권을 일본돈 10만원에 샀으며 이 장서를 바탕으로 모로하시가 1960년 <한화대사전>을 발간하니 동양학의 중심이 중국인줄 알았는데 일본에서 사전을 만들어내니 세계는 놀랐다
옛날의 현인들은 후손들이 재주가 없어 아마도 이 귀중한 책들을 뒷날 깨진 간장독과 흙벽을 바르는데 쓰게 될 것이라고 걱정하면서도 자손 중에는 반드시 학문을 좋아하는 후손이 있을 것이다.(吾子孫必有好學者)고 희망을 놓지를 않았다. 이 시대에도 이런 일은 유효한 것인지 생각해 본다.
헌:-책을 서재에 장서하려면 약간의 버려둔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상처받은 시간을 다 보상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보상하고 쓰다듬어 주어야 한다. 먼저 먼지를 털어내고 햇볕에 포쇄(曝曬)하여야 한다. 오랜 세월 몸을 세우고 책꽂이에 꽂혀있었으니 이젠 눕혀서 쉬게 하여야 한다. 바로 풀칠을 하여 덧붙이는 것은 조심하여야 한다. 세월만큼의 상처도 역사이니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 보는데 불편하지 않으면 늙은 상처가 아름다울 수도 있다. 한꺼번에 완전하게 하려고 욕심내는 것은 금물이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구겨진 책장을 펴주고 헤진 것을 붙여준다.
<정가당문고한적분류목록> 1930년. 둔굴재 소장.
<동방학지(제2집)> 연희대학교. 1955년. <대학, 중용> 학민출판사.
<성리대전서 권지11> 수복이전.
<성리대전서 권지11> 수복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