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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장서가(藏書家)와 장서실(藏書室)

둔굴재 2015. 3. 9. 21:42

한국의 장서가(藏書家)와 장서실(藏書室)

 우리나라 최초의 도서목록집은 1090년 고려 대각국사(大覺國師)의 저술『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으로『의천목록』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 있는 경전과 요나라ㆍ송나라ㆍ일본 등지에서 모아 간행한 교소(敎疏) 1,010부, 4,740여 권의 목록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장서인이 날인 된 서적은 임금의 장서 2종이 있다. 숙종 6(1101)년 임금의 장서에 [高麗國十四葉辛巳歲御藏書大宋建中靖國元年大遙乾統九年]과 [高麗國御藏書]라는 장서인이 날인되어 있다. 이 장서인이 있는『통전(通典)』과『중광회사(重廣會社)』은 일본 궁내부 서릉부와 존경각문고에 각각 전래되고 있다.

 국내 전래본으로는 고려 고종년간 재조대장경을 간행할 때에 여러 대장경을 교수한 사문 수기(守其)의 [海東沙門守其藏本]이란 무쇠 장서인이 날인되어 있는 화엄경 주본 권61의 1축이 최고본이다.

 

왕실문고

 고려 예종의 임천각(臨川閣), 청연각(淸燕閣)과 보문각(寶文閣). 충선왕의 제미기덕당( 濟美基德堂), 만권당(萬卷堂). 조선 세종은 집현전, 장악원(掌樂院). 세조는 홍문관, 영조는 규장각(奎章閣).

정조는 홍재(弘齋). 우합루(宇合樓),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 1418~1453)의 비해당(匪懈堂), 고종의 4사고(四史庫) 규장각, 홍문관, 집옥재(集玉齋), 춘방(春坊), 그리고 장서각.

 

향교와 서원문고

  대구향교 낙육재(樂育齋), 옥산서원의 어서각(御書閣), 경각(經閣), 청분각(淸芬閣), 소수서원의 장서각, 도산서원의 광명실(光明室), 역락서재(亦樂書齋), 도동서원의 장판각, 인흥서원의 요산료(樂山寮).

 

 개인 장서가

신백청(申伯淸, 1332~1388)의 시직재(矢直齋), 빈우광(賓于光)의 송헌문고(松軒文庫). 빈대기(賓大期)의 목간당(木澗堂). 성삼문(成三問, 1418~1456)의 매죽헌(梅竹軒), 권발(權撥, 1478~1548)의 충재(冲齋), 이언적(李彦迪, 1491~1533)의 독락당(獨樂堂), 유희춘(柳希春, 1513~1577). 이우민(李友閔, 1514~1574)의 수졸재(守拙齋), 유시회(柳時會, 1562~1635)의 청문당(淸聞堂). 이수광(李睟光, 1563~1628). 이민환(李民寰, 1573~1649)의 다정재(茶井齋), 민성휘(閔聖徽, 1582~1647)의 용졸당(用拙堂),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의 억만재(億萬齋), 취묵당(醉墨堂). 오국화(吳國華),

이경억(李慶億, 1620~1673)의 만권루(萬卷樓). 홍만종(洪萬宗, 1643~1725)의 이한당(二閑堂). 이하곤(李夏坤, 1677~1724)의 완위각(宛委閣). 이익(李瀷, 1681~1763)의 성호장(星湖庄). 유척기(兪拓基, 1691~1767)의 지수재(知守齋), 안정복(安鼎福, 1712~1791). 강세황(姜世晃, 1713~1791). 서명응(徐命膺, 1716~1787)의 죽서재(竹西齋).

김한신(金漢藎, 1720~1758)의 수은정(垂恩亭), 서형수(徐瀅修, 1725~1779)의 오여헌서옥(五如軒書屋), 필유당(必有堂).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의 담헌(湛軒),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연암산방(燕巖山房), 유금(柳琴, 1741~1788)의 기하실(幾何室),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구서재(九書齋), 청장관(靑莊館). 선귤헌(蟬橘軒), 팔분당(八分堂),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의 고운서옥(古芸書屋), 사서루(賜書樓). 『규합총서』지은 빙허각 이씨의 남편 서유본(徐有本, 1752~1822)의 태극실(太極室). 김희순(金羲淳, 1757~1821)의 산목헌(山木軒), 남공철(南公轍,·1760~1840)의 이아당(爾雅堂),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여유당(與猶堂), 강필효(姜必孝, 1764~18480의 건곤재(☰☷齋), 800권의 장서와 임원경제지의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자연경실(自然經室), 풍석암서옥(楓石巖書屋). 심상규(沈象奎, 1766~1838)의 4만권의 장서와 옹방강의 편액 가성각(嘉聲閣), 신위(申緯, 1769~1847)의 청풍오백간(淸風五百間), 소재(蘇齋), 이정리(李正履, 1783~1843)의 실사구시재(實事求是齋), 유중서(柳重序, 1779~1846)의 경성당(竟成堂).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시경헌(詩境軒), 보담재(寶覃齋), 초의(艸衣)의 일로향실(一爐香室), 황상(黃裳, 1788~1870)의 일속산방(一粟山房),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의 백이연전전려(百二硯田田廬), 이조묵(李祖黙. 1792~1840)의 보소재(寶蘇齋), 윤정현(尹定鉉, 1793~1874)의 삼연재(三硯齋), 윤치정(尹致定, 1800~ ?)의 석취(石醉). 조병귀(趙秉龜, 1801~1845)의 유하(遊荷). 조면호(趙冕鎬, 1803~1887)의 자지자부지서옥(自知自不知書屋),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의 해린서옥(海隣書屋), 이규경(李圭景, 1877~?).

김용한(金龍漢, 1826~1891)의 낙파문고(樂波文庫), 김석준(金奭準, 1831~1915)의 이초당(貳艸堂), 허전(許傳, 1845~1908)의 이택당(麗澤堂). 정일우(丁日宇)의 묵용실(容室),

장규섭(張奎燮. 1863~1940)의 학서문고(鶴棲文庫), 김뢰식(金賚植, 1877~1935)의 영규헌문고(映奎軒文庫). 문박(文樸, 1880~1930)의 인수문고(仁壽文庫), 문태갑(文胎甲)의 중곡서고(中谷書庫), 김부일(金富鎰)의 둔굴재(屯屈齋).


대구 달성의 장서가 문박(文樸, 1880~1930)의 <수봉유고>.


곡성의 장서가 정일우(丁日宇)의 <율헌집>.


<율헌집> 내지의 정일우의 장서인 학사실장(學士室藏).


오강 김정호 <오강유고> 1918.



곡성의 <관수유술> 바위의 율헌 정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