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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

둔굴재 2015. 4. 19. 10:56

3권 1책. 활자본. 우리나라에 전해져 오는 가장 오래된 의방서이다.

  윤상(尹祥)의『별동집』<의흥개간향약구급방발>에 의하면 이 책은 본래 고려시대 1236년(고종 23)경 강화도에서 팔만대장경을 만들던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처음으로 간행한 것으로 생각되며, 그 뒤 1417년(태종 17) 7월 경상도 의흥현감 최자하(崔自河)에 의하여 중간하였다. 그러나 현재 둘 다 우리나라에는 전하지 않고 1417년 중간본 1책이 일본 궁내청 서릉부(宮內廳書陵部)에 비장되어 있다.

  이 책의 책명으로 되어 있는 ‘향약’이라는 말은 우리나라 향토에서 산출되는 약재를 의미한 것인데, 중국에서 수입되는 약을 당재(唐材) 혹은 당약이라고 부르는데 대해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의 총칭이다.

 『향약구급방』은 민간에서 구할 수 있는 약재로 급한 병을 구하는 방문(方文)을 모아놓은 것이므로, 약재나 병의 한어명(漢語名)에 해당하는 우리말(鄕名)을 차자(借字)로 기록하여 민간인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이 향명이 13세기 중엽의 국어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국어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향명은 본문인 방문 가운데 한어명의 세주(細註)로 기록되기도 하였지만, 부록인 권말의 방중향약목초부(方中鄕藥目草部)에 정리되어 있다.


       윤상의 <별동집>. 둔굴재 소장.


<별동집>의 '의흥개간향약구급방방' 발문.


예천(醴泉)

  예천은 신라에서는 수주(水酒), 고려에서는 보주(甫州)라고 불렀다. 군의 서쪽에 있는 덕봉산(德鳳山)이 진산이다. 산에는 흑응성(黑鷹城)이 있다. 동헌의 이름은 송계당(松桂堂)이고, 객관의 문루는 쾌빈루(快賓樓)로 윤상(尹詳)과 이의무(李宜茂)의 기가 있고 권맹손, 윤상, 홍귀달, 김정국, 서거정 등의 시가 있다. 연빈루(燕賓樓)에는 권오복의 기문이 있다.


  예천이 신라 때부터 수주라 불리운 것을 보면 물과 깊은 관련이 있다. 물맛이 술맛과 같이 달콤했다. 주천(酒泉)이란 우물이 관혁동에 있으며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물맛이 달았다. 명나라 장수 양호(楊鎬)가 이곳을 지나며 물맛을 보고 단술 같다 하여 예천이란 지명이 생기게 되었다.


  예천이란『예기』예운편 태평성대에는 하늘은 그 도를 아끼지 않고, 땅은 그 보배를 아끼지 않고, 사람은 그 정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기에 “하늘은 기름진 이슬을 내리고, 땅은 단술의 샘을 내보낸다.(天降膏露 地出醴泉)”에서 온 말이다. 예천이란 지명은 태평 성대한 고을이 되는 시정목표였다. 예천이란 단술의 샘물은 아무 때나 나오는 것은 아니라 태평성대한 정치가 이루어 질 때 나오는 샘물이기 때문이다.

  이 고을 출신 윤상은 예천객사 동헌에서 “천길 산성에는 구름과 안개가 오래고 십리 뽕밭과 삼밭에는 비와 이슬이 깊구나(千尋山郭雲煙老 十里桑麻雨露深)”하였고, 이거인(李居仁)은 “문 앞의 버들과 꽃은 평평한 냇물을 사이에 두었고, 발 밖의 소나무 그늘은 푸르름이 하늘에 닿았구나(門前花柳隔平川 簾外松垂翠接天)”하였다. 이에『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