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주량공(周亮工)의 <주역원도서기(周櫟園圖書記)> 인장

둔굴재 2016. 5. 4. 08:39


銅章 <주력원 도서기> 3.2*6.8*3.5cm.  둔굴재 소장.




주량공(周亮工)의 <주역원도서기(周櫟園圖書記)> 인장

  주량공(周亮工, 1612~1672)의 자는 원량(元亮)이고 호는 역원(櫟園), 역노(櫟老), 역하생(櫟下生)이다. 청나라 초기의 하남성 개봉 사람이다. 그의 조상 대대로 일찍이 금계(金溪)의 상수리나무 아래에 살았기 때문에 스스로 력원(櫟園)이라고 아호하였다. '력(櫟)'은 상수리나무인데 무용의 재목으로 '재주없는 사람', 또는 '쓸모없는 사람'을 비유한다. 숭정년간에 진사가 되어 관어사(官御史), 좌포정사(左布政使), 호부좌시랑(戶部左侍郞)에 이르렀다. 고문에 뛰어났고 팔분서를 잘 썼으며 박학다재했다. 그는 특히 고새인과 당시 전각가의 작품과 인보를 소장하기를 좋아하였다. 스스로도 “평생 이를 좋아했으니 단지 미불만 돌을 좋아한 것은 아니다.(生平嗜此 不啻南宮愛石)”라고 했다. 집안에 소장한 도서, 서화, 벼루, 옛날 먹, 청동기가 매우 풍부했다. 즐겨 유명하고 우아한 선비와 사귀며 그들에게 인장을 새겨달라고 청한 것이 천여 방에 달했다. 주량공은 혜안이 있고 감상력이 매우 뛰어나 평론으로 전각계에 귀한 대접을 받았다. 당시 인단의 인장을 논하며 평생 주로 인학등의 연구와 저술에 정력을 바쳤다. 저서로는『뢰고당시초(賴古堂詩抄)』,『뢰고당문집(賴古堂文集)』,『인인전(印人傳)』,『뢰고당장인(賴古堂藏印)』,『역원독화록(櫟園讀畵錄)』,『인수옥서영(因樹屋書影)』,『민소기(閩小記)』,『자촉(字触)』,『척독신초(尺讀新鈔)』등이 세상에 전한다.『인인전』은 명나라 중기에서 청나라 초에 이르는 66명의 전각가를 기록한 것으로, 그들의 생평과 사적및 인단의 유파와 풍격의 변천을 적었다. 역사적 사실과 본인의 관점을 밝혔는데 자못 독특하고 정확한 견해가 많다. 이는 명, 청 전각사를 연구하는 데에 필수적인 일차적인 자료이다. 주량공은 흥취가 이르면 각을 새겼는데 안목이 높고 솜씨가 평범하지 않아 별도의 공력과 예스러운 정취가 물씬거린다. 이 <주역원도서기>는 동장(銅章)으로 선이 가늘고 분명하며 아름답다. 


  주량공의『척독신초(尺讀新鈔)』에 정여기(鄭汝器)에게 주는 편지에서 "그림은 가까이에서 보아도 좋고 멀리서 봐도 좋아야 한다. 이것을 복지관화법(仆之觀畵法)이라 하는데, 실상은 복지심인법(仆之心印法)이다. 대개 가까이서 보면 작은 세목들이 보이고 멀리서 보면 큰 단락들이 보인다."고 하였고,


 정유홍(程幼洪)에게 주는 편지에서 "바둑을 두는 사람은 바둑알을 놓는데 동쪽을 친다하면서 서쪽을 공격하며 차츰 잠식해 가더니 끝내 단마다 모두 승리한다. 이것이 바로 바둑 기사들이 송법(鬆法)을 잘 쓴 경우이다.그림도 송법을 잘 쓰는 것보다 더 기묘한 것은 없다. 성글성글 배치하다가 점차 층층이 조금씩 물들여 마침내 맑고 깨끗하며 깊고 빼어나게 만들어서 그 그림을 보면 상쾌한 기쁨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