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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보(述寶)

둔굴재 2017. 11. 26. 14:38

  ‘술보(述寶), 서술한 문장이 보배이다’ 이 문장은『논어』술이편에서 “서술하기만 하고 지어내지 않으며, 옛것을 믿고 좋아하므로 스스로 나를 노팽(老彭)과 비교하고 싶구나.(子曰, 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의 술이부작(述而不作)를 전고로 한듯하다.


  오늘날 세상에서는 공자를 ‘유학의 창시자’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적어도 공자 자신은 절대로 자신이 무언가의 창시자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유(儒)’는 다만 고래의 인문전통을 계승했을 뿐이고, ‘유(儒)’의 사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옛 성왕(聖王), 성현(聖賢)의 행적에 깃든 참뜻을 이어갈 뿐이라고 여겼다. 유명한 술이부작(述而不作), 즉 “전술(傳述)하지만, 창작(創作)하지는 않는다.”는 말은 이것을 뜻하는 것이다. 사실 묵자(墨子)의 묵가(墨家)처럼 지도자 이름을 따 공가(孔家)라 불리지 않고 유가(儒家)라는 이름이 보편화된 것도 후대의 학자들이 이를 감안하였기 때문이다.


  저서를 쓰는 것보다 고전에 대한 주해를 더 높이 평가한다. 그 어떤 저서도 결국은 남이 쓴 것을 이리저리 참고한 것이기 때문이다. ‘술이부작’은 있는 그대로 기술할 뿐 새로 창작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학자의 겸손한 자세와 객관적 태도를 강조하여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공자는 옛것을 믿고 좋아하여서 공자이전 수천 년의 문화는 그가 서술해 두었으므로 지금까지 전해졌으며, 공자이후 수천 년의 문명은 모두 그에게 근본을 두고 시작되었다. 공자는 스스로 고대문화의 전승자라고 여겨 자신은 현인의 제도를 전할 뿐 새로 만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헌문편에 공자는 고향친구 원양을 혼내는 내용이 있다. 친구는 어려서부터 불손하고 우애가 없었고, “커서는 서술함이 없었다(長而無述焉)”하였다. 공자는 장성하여서는 후배들에게 좋은 말을 남길 수 있는 저술이 있어야 했다. 원양은 세속 밖의 인물로 예교에 구속받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이 40이 되어서 욕이나 얻어먹고 좋은 소문이 들리지 않는다면 그건 이미 인생 끝장난 것이다.



술보(述寶), 0.7 * 1.6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