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儒)는 기우제와 관련이 있다. 子+需. ‘需(수)’는 하늘과 산천에 비 내려달라고 기우제에서 비는 수염 있는 무당이다. 기우제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온화한 사람의 뜻에서 전의되어 유학자의 뜻을 나타낸다.
상나라 갑골문 복사(卜辭)의 내용에는 “갑오(11~13)시에 상나라 왕의 뜻에 따라 점을 쳤다. 묻건대 저녁에 비가 올 것인가? 점친 결과를 확인하니 좋은 조짐이 있다. 저녁 무신(15~17)시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과 산천에 비 내려달라고 기원하는 뜻을 가진 기(祈)와 축(祝)의 훈독이 ‘비다’이다. 이것은 기우제에서 비 내려달라고 빌었더니 비가 왔다고 ‘비(雨)다’고 감탄하는 것이다. ‘비(雨)’라고 훈독하는 것은 빌어서 하늘이 감응한 것이다. 기우제를 지낼 때 쓰는 단을 기우단이라 한다. 기우단을 달리 ‘비빌이단’이라고도 한다. 기(祈)는 하늘과 산천에 기원하였으므로 산제사 ‘궤’로도 읽는다. 사람은 흙으로 만들었으므로 산에 가서 ‘아들 낳아 달라’고 축원한다. 신(神) 중에는 산신이 최고의 자리이다. 흙이 모인 것이 산이고 사람을 만들 수 있는 신이기 때문이다. 산에 나무를 통하여 하늘로 오르고 신이 내려오고 올라간다.
공자의 어머니 안징재는 니구산(尼丘山)에 빌어서 공자를 낳았다. 그래서 공자의 이름은 니구산의 ‘언덕(丘)’이고 자(字)는 ‘니구산의 둘째 아들(仲尼)’이다. 그 후로 아들이 소원인 여인들은 산신기도를 한다. 북방민족은 사람이 산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산을 중시하고 산신을 공경한다. 산신에게 제사 지낼 때 불을 피워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게 한다. 남방은 물을 중시하여 수신이 있고 제사 지낼 때 물에 제물을 물속에 던진다.
조선의 유학자의 문집 속에는 나라에 가뭄이 들면 ‘◯◯산 기우제문’을 지어 산천에 제사지냈다. 대개가 영험한 산이나 물가에서 지냈으며 문장도 4언으로 된 운문이다.
첸무(錢穆)의『공자전』을 살펴보면 “당시의 사족들은 여섯 가지 기예를 열심히 익혔는데, 이를 기반으로 집안을 일으키려 했다. 이른바 ‘유(儒)라는 사업[儒業]’이다. ...... ‘유(儒)’는 당시 사회의 한 신분형태로, 공자 이전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즉 숙량흘과 공방숙처럼 귀족층에 속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민의 신분도 아닌 사족으로, 그들이 주로 담당한 직업군을 가리켜 ‘유(儒)’라고 했다.”
여섯 가지 기예는 예절, 음악, 활쏘기, 마차몰기, 글쓰기, 산술을 말한다. 공자는 주공이 이루어 놓은 예와 악을 집대성하여 ‘유(儒)’로 일가를 이루어 제자백가의 한 갈래로 유가(儒家)를 이루었다. 그러므로 공자의 유가를 통하지 않으면 공자 이전의 역사에 접근할 수가 없다. 유가이후 묵자, 맹자, 장자, 순자, 한비자, 노자, 여씨춘추, 도가, 명가, 농가, 종횡가, 소설가 등이 나왔다. 제자백가에서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은 공자이다. ‘유(儒)’는 전문적인 예의에 참가하는 사람이었다. 공자가 사학을 개창한 이후 유가가 탄생하게 되었다.
‘유(儒)’는 고래의 인문전통을 계승하는 집단으로 무언가 창시하지는 않는다. 유의 사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옛 성왕(聖王), 성현(聖賢)의 행적에 깃든 참뜻을 이어갈 뿐이라고 여겼다. 유명한 술이부작(述而不作), 즉 “전술(傳述)하지만, 창작(創作)하지는 않는다.”는 말은 이것을 뜻하는 것이다. 사실 묵자(墨子)의 묵가(墨家)처럼 지도자 이름을 따 공가(孔家)라 불리지 않고 유가(儒家)라는 이름이 보편화된 것도 후대의 학자들이 이를 감안하였기 때문이다.
‘유(儒)’는『서경』주서(周書) 강고(康誥)에 ‘유자지도(儒者之道)’라 하였다. 공자학파의 사람을 ‘유자’라 부른 가장 초기의 문헌적 전거일 것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자하에게 “군자다운 유자(君子儒)가 되어야지 소인같은 유자(小人儒)는 되지 말아라”고 하였다. 유(儒)는 본래 천한 직업의 하나로 글을 가르치고 예를 도와주며, 남녀의 결혼식이나 죽은 자의 장례식에 일을 처리 해주면서 밥을 먹고 살았다. 공자가 제창한 ‘유(儒)’는 경전을 정밀하게 연구하고, 수양을 중시하며, 예학의 깊은 의미를 진정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다. 군자유는 천하를 자신의 책임으로 하고 백성을 구하는 데에 뜻을 두는 사람이다. 소인유는 자기 한 몸 잘 다스리는데 만족할 뿐이니 타인에게 미칠 수가 없다. 자하는 비록 문학에는 재질이 있었지만 원대한 뜻에는 어두워서 규모가 협소하였다.
공자는 ‘유(儒)’로 일가를 이루어서 유가(儒家)의 시조가 된다. 유가이후 ‘유(儒)’를 배워야한다고 유학(儒學)이 시작되었고, 유를 가르쳐야한다고 유교(儒敎)가 시작되었다. 공자의 학문을 수사학(洙泗學), 경학(經學)이라하고, 한대의 훈고학(訓詁學), 명대에 왕양명의 양명학, 송대에 주희의 주자학, 성리학, 정호 정이의 정주학, 낙민학(洛閩學), 육구연(陸九淵)·왕수인(王守仁)의 심학(心學), 청대에 고증학, 조선 이황의 퇴계학, 실학, 일본 이토 진사이(伊藤仁齋)의 고의학(古義學) 등은 모두 유학의 갈래이다.
유교(儒敎), 유도(儒道), 유술(儒術)은 공자 학도의 교학내용을 의미하고, 유가(儒家), 유문(儒門), 유림(儒林)은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다.
<儒藏> 성산 김욱한 서. 100년 후 어느 후손이 <유장세가(儒藏世家)>라고 부를 인물이 태어나기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