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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남에게 미움을 받고(見惡)

둔굴재 2019. 2. 24. 20:35

마흔에 남에게 미움을 받고(見惡)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으면(無聞) 종(終)쳤다.


  세상 사람의 속된말에 ‘종쳤다’는 말이 있다. ‘학교 종을 쳤다’할 때와 ‘끝났다’을 세상 사람들은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학교 종은 시작과 끝남이 있고, ‘끝났다’는 시작한 것이 ‘끝났다’는 뜻으로 ‘절망적이다’는 의미로 쓰여 진다. 이 말이 세상을 함부로 살지 말라는 공자의 준엄한 말씀인 줄은 한참 후에 깨달았다.

『논어』양화편은 사람의 자신을 살펴 가다듬는 처세(處世)와 출처(出處)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이편의 결론에서 공자께서 말씀하였다. “나이 마흔이 되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으면 그 사람은 끝난 것이다.(子曰 年四十而見惡焉 其終也已)” ‘기종야이(其終也已)’는 ‘그는 일생동안 끝이다’는 뜻으로 ‘종(終)쳤다’이다. 여기서 ‘견오(見惡)’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욕을 먹는 것이다. 사람의 나이 마흔은 중년으로 경험이 충분해 진다. 더 이상의 교육은 필요하지 않고 스스로 고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결점을 고칠 수 없다면 더 이상 말할 것이 없다. 이미 굳어져 고칠 수가 없다. 옛날 사람의 수명은 짧아서 40, 50이면 살만큼 산 것이다. 60은 장수한 것이다.


  공자는 자신의 인생 체험에 의하면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서른이 되어서는 자립하였으며, 마흔이 되어서는 미혹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의 나이 마흔을 ‘불혹(不惑)’이라 한다. 동양에서 마흔이란 40에서 49까지를 이른다. 서양의 마흔은 정확하게 마흔을 말한다. 마흔의 나이는 세상일에 미혹함이 없었다는 뜻이며 배워야 된다는 것에는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는 것이다. 배워서 지혜로운 자는 미혹되지 않는다(知者不惑)하였다.『맹자』도 마찬가지로 “나는 사십에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다”고 부동심(不動心)을 말하였다.

  공자께서 자한편에서 또 말씀하였다. “나이 마흔 혹은 쉰이 되어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으면 그 역시 두려워할 만한 가치가 없다.(子曰 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 ‘무문(無聞)’은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것이다. 사람의 나이 마흔이 되도록 다른 사람에게 욕이나 얻어먹고(見惡)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으면(無聞) 종(終)쳤다. 인생 끝났다는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은 사람됨의 정도에 따라 다르다. 학문을 한 사람은 견오(見惡), 무문(無聞)이라 하면 알지만 전통사회의 여성이나 아랫사람의 가르침이란 책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윗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보고 배운다. 종쳤다는 말은 마치다 ‘종(終)’를 쇠북 ‘종(鍾)’에 갖다 붙인 것이다. 공자의 학문과 삶이란 끝없이 사람 되는 것이었다. ‘종(終)’쳤다는 말에 공자의 준엄한 가르침이 있는 줄은 오늘 새롭게 알았다.

 『예기』곡례에서는 “마흔을 강(强)이라고 하며 이때에 벼슬을 한다.(四十曰强 而仕)”에서 마흔의 나이를 ‘강사(强仕)’라고 한다. 벼슬을 하여 힘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기력이 왕성하다는 뜻이다. 서른을 장(壯)이라고 하여 이때에 아내를 갖고 가정적으로 안정이 되고 마흔에는 사회에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나이이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경계해야하는 것이 있다. 젊은 시절에는 혈기가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색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하고, 장년이 되어서는 혈기가 한창 강하기 때문에 싸우는 것을 경계해야하고, 늙어서는 혈기가 이미 쇠퇴했기 때문에 재물 얻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장년(壯年)은 서른의 나이를 말한다. 싸움을 조심해야하는 때이다. 인생은 짧아서 마흔은 ‘초로(初老)’로 늙어서 기력이 쇠퇴하는 나이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열 살이 되면 유(幼)라고 한다. 이때에 배운다. 그래서 유학(幼學)이라 한다. 20세가 되면 약(弱)이라고 한다. 이때에 관례를 한다. 그래서 약관(弱冠)이라 한다. 30세가 되면 장(壯)이라고 하며 이때에 아내를 갖는다. 그래서 기상이나 인품이 훌륭하여 장년(壯年)이라 한다. 40세가 되면 강(强)이라고 하며 이때에 벼슬을 한다. 그래서 강사(强仕)라 한다. 군자가 벼슬을 하는 것은 녹봉을 받으려는 이유 때문은 아니다. 벼슬을 함으로써 자기의 이상을 천하에 펼치려하는 것이다.

  공자가 끝났다는 것은 “봉황새는 날아오지 않고, 황하에서는 그림이 나오지 않는구나. 내가 끝났다는 것이겠지.” 지금까지 봉황새가 날아오지 않고 하도(河圖)가 나오지 않는다. 

 

  미국의 링컨대통령이 “마흔이 넘은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는 동양의 정신을 서양적으로 말한 것이다. 링컨 대통령도 아마『논어』의 공자 말씀을 잘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