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재는 경산시 계양동 북부동사무소 앞에 있었으며, 팔하 서석지의 아들 서경순(徐耕淳, 1840~?)의 서재이름이다. 회산 박기돈의 글씨를 판각하여 녹당채색으로 마감하였다. 글씨의 획수가 적은 글씨를 조화롭게 썼다. 현판의 테두리에는 아자문(亞字文) 장식이 있다. 중산은 문우관 진덕문(進德門) 편액도 썼으며 부친의 서예 이론서 <필감>을 1917년 편집발행하였다.
중산재는 경산시 계양동 북부동사무소 앞에 있었으며, 팔하 서석지의 아들 서경순(徐耕淳, 1840~?)의 서재이름이다. 회산 박기돈의 글씨를 판각하여 녹당채색으로 마감하였다. 글씨의 획수가 적은 글씨를 조화롭게 썼다. 현판의 테두리에는 아자문(亞字文) 장식이 있다. 중산은 문우관 진덕문(進德門) 편액도 썼으며 부친의 서예 이론서 <필감>을 1917년 편집발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