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의 자식 교육은 회초리로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식교육이란 것이 때려서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때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공문제자 72현인 중 말 잘하는 재여(宰予)는 자주 스승의 눈에 거슬렸던 것 같다. 배운 것을 실천하지 않고 낮잠을 자면서 언변에만 능한 재여에게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고, 더러운 흙으로 쌓은 담장에는 흙손질을 할 수 없다. 너에 대해 내가 무엇을 탓하겠느냐?” 하였고, “처음에 나는 사람을 대할 때 그의 말을 듣고 그의 행동을 믿게 되었는데, 지금 나는 사람을 대할 때 그 말을 듣고도 그 행동을 살피게 되었다. 재여에 대해서도 이처럼 바뀌었다.”하였다. 재여는 3년 상이 너무 길다고 했다가 꾸중을 듣기도 한다. 그러고도 자공과 함께 언변에 능하였고 외교방면에 재능이 있어서 공문십철에 들었다. 그리고 공자의 형 맹피(孟皮)의 아들 공충(孔忠)은 학문에 정진하지 않는다고 매를 맞았던 같다. 공충의 자는 자멸(子蔑)이다.
그 이야기는 『공자가어』와 유향의 『설원(說苑)』 정리(政理)편에 보면 공멸(孔蔑)과 자천의 인물됨을 ‘잃은 것 세 가지와 얻은 것 세 가지(亡者三과 得者三)’을 가지고 비교하는 내용이 있다.
공자의 조카 공멸(孔蔑)와 제자 복자천(宓子賤)은 똑같이 벼슬살이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공자는 공멸이 벼슬살이하는 곳을 지나다가 그에게 물었다. “너는 벼슬길에 오르고 부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느냐?” 이에 공멸이 대답하였다.“저는 벼슬살이를 하고 부터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잃은 것은 세 가지나 됩니다. 즉 임금의 일에만 얽매여 괴롭게 되니 학문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학문에 대해서 밝게 할 수없는 것입니다. 또 봉록(俸祿 )이 너무 적어서 죽을 먹게 되오니 어느 겨를에 친척을 돌아볼 겨를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골육 간에 더욱 소홀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무에 다급해서 죽은 자를 조상하고 병든 자를 문병하지 못하게 되니, 이것은 친구 간에도 소홀하게 되오니 그 잃어버린바 세 가지란 이런 것입니다.
공자는 이 말을 듣고 기쁘게 여기지 않았다. 그 길로 복자천을 찾아보고 공멸에게 같은 말로 물어 보았다.
저는 벼슬살이를 하고 부터 잃은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얻은 것이 세 가지나 됩니다. 어려서 배웠던 것을 오늘날 실천하게 되니 이것은 학문이 더 욱 밝아지는 것이오며, 봉록을 받는 것으로 친척들까지 돌봐주게 되니 이것은 골육 간에 더욱 친하게 되는 것이며, 공무를 마친 여가에 죽은 사람도 조상하고 병든 사람도 위문하게 되니 이것은 친구 간에도 더욱 정이 두텁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얻은 세 가지란 바로 이것이옵니다.” 공자는 이 말을 듣고 탄식하고 나서 자천에게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너는 군자구나 노나라에 군자가 없다면 자천이 이런 말을 하겠느냐?”
공멸과 복자천의 이야기는 같은 조건에서 반대로 비교된다. 이후로 공멸(孔蔑)의 蔑(멸, 매)은 ‘멸’로도 읽고 ‘매’로도 읽는데, ‘매’로 읽으면 회초리 ‘매’가 된다. 회초리는 나무의 가늘고 긴 가지이다. 회초리로 사용하는 나무는 싸리나무이다. 아버지는 향교나 서원에 자식을 보내놓고 싸리나무 빗자루를 한 짐 해서 준다. 향교의 마당 쓰는데 사용하기도하지만 상징적으로 우리 아들 회초리를 사용하여 사람 만들어 달라는 은근한 부탁이다. 단, 대나무 ‘자(尺)’로는 회초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스승의 잣대로 성장하는 학동의 자유로움을 방해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또, 육례(六禮)에 사성(四星)을 신부 집에 보낼 때 대각선으로 묶는데도 싸리나무를 반으로 쪼개어 사용한다. 이것은 자식을 회초리를 쳐서 바르게 가르쳤습니다하고 알리는 은유적 표현이다.
조선의 선비는 회초리를 공자 조카의 이름 ‘매(蔑)’로 읽으며 항상 경계로 삼았다. 공매는 매를 맞고 반성하며 열심히 학문을 하여 공자의 72현인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