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구석에 있다’ 또는 ‘방구석에 있다’와 같이 집구석, 방구석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을 가지면서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방구석(房舊席)은 ‘방의 오래된 자리’란 뜻으로 『시경』에서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듯하다. 옥루[屋漏]라 하여 전통적으로는 서북쪽의 구석진 자리로 풀이하지만 문자적으로는 방에서 비새는 곳이다. 방구석[房舊席]의 전고이다.
『시경』 대아 억(抑)편에 “네가 홀로 방에 있음을 살펴보니 오히려 방 귀퉁이 지붕에서 비새는 곳[屋漏]에도 부끄럽지 않네”하였다. 『중용』에서는 『시경』을 인용하면서 움직이지 않아도 공경하며, 말하지 않아도 믿는다하며 경계하고 두려워함이 때와 장소와 관계없이 그렇지 않음이 없다하였다.
‘억(抑)’은 위(衛)나라 무공이 여왕(厲王)을 풍자하고 스스로 경계한 시라고 모두 이설을 따라 풀이하고 있다. 위나라는 주무왕이 은나라를 친후 주(紂)임금의 아들 무경을 은나라 유민들이 사는 땅에 세워 은나라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그리고 다시 그 당을 삼분하여 무왕의 아우 관숙과 채숙, 곽숙을 세워 은나라 신하들을 감독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무경이 다스리건 곳을 패(邶), 관숙이 다스리던 곳을 용(鄘), 채숙이 다스리던 곳을 위(衛)라 부르게 되었는데, 이들을 은나라 백성을 감독하는 세 사람으로 삼감(三監)이라 불렀다. 곧 주임금의 도읍이었던 조가(朝歌) 또는 은허(殷墟)의 북쪽을 패라 하고, 남쪽을 용, 동쪽을 위라 불렀다.
성왕 때 주공이 무경과 관채의 난을 평정한 뒤에는 강숙(康叔, 이름은 封)을 위에 봉하고 패, 용의 땅까지도 다스리게 하였다. 강숙은 조가에 도읍하여 은나라 유민을 다스렸는데, 그의 자손대에 이르러는 패, 용의 국경은 유야무야되어 버리고 통틀어 위라 불렀다.
옥루[屋漏]는 방의 서북쪽으로 가장 어둠침침한 곳이다. 아무도 방안에 없다하더라도 반드시 행동을 삼가며 어두운 구석에서도 부끄러움이 없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방의 구석진 자리는 수양하는 사람의 움직이지 않는 자리이다. 옥루[屋漏]는 방의 서북쪽 모퉁이로 가장 어둠침침한 곳으로 아무도 방안에 없다 하더라도 반드시 행동을 삼가서 어두운 구석에서도 부끄러움이 없게 되를 바란다는 뜻이다. 방에서 비새는 곳으로 방의 구석진 자리이다.
한유는 <송후참모부하중막(送侯參謀赴河中幕)> 시에 “말을 몰아 누구에게 갈 것이며, 누구를 상대로 대화를 나눌 것인가. 옛 자리의 먼지도 애석해서 털지 않고, 대작하던 술동이에는 남은 술만 엉겨있네.[策馬誰何適 晤言誰爲凝 席塵惜不掃 殘罇對空凝]”라고 하였다. 자리의 먼지[席塵]가 그대로 있을 정도로 변함없이 옛날과 같다는 뜻이다. 여기서 구석진[舊席塵]과 방구석진[房舊席塵]이란 말이 생겼다.
오래된 자리의 먼지도 움직이지 않는 진짜 구석진[舊席塵]은 구년면벽(九年面壁)하는 달마대사의 모습이 연상된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방구석에 콕 박혀있다고 ‘방콕’이라 한다. 방의 모퉁이에 부끄럽지 않게 수양하고 있을 것이다.
청도인 김여진(金汝振, 1663~1713)의 호는 상재헌[相在軒]이다. 청주인 정은석(鄭恩錫)이 근장한 행장에 보면 “일찍이 꿈에 할아버지 석계공 김처중(金慶和)을 보았다. 공은 방구석[屋漏]을 손가락질하면서 경계하게 하였다. 이에 그 방을 상재헌이라 편액하였다.”했다. 할아버지가 가리키는 옥루[屋漏]의 의미를 “네가 방에 홀로 있는 것을 살펴보면[相在爾室]”으로 아호를 하였으며 『시경』의 기욱[淇澳], 빈지초연[賓之初筵], 억[抑]의 시문으로 구잠[九箴]을 지어 종신토록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는 경계[弦韋之械]로 삼았다.
경계하는 방안에 아무도 없다 하더라도 반드시 행동을 삼가서 어두운 구석에서도 부끄러움이 없게 되를 바란다는 “네가 방에 홀로 있는 것을 살펴보면[相在爾室]”를 종신토록 아호로 삼고 삼가고 수양하였다.
‘집구석에 있다’ 또는 ‘방구석에 있다’와 같이 집구석, 방구석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을 가지면서 오늘날에는 부정적인 말로 쓰여 진다. 그러나 방구석(房舊席)은 ‘방의 오래된 자리’란 뜻으로 『시경』에서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듯하다. 옥루[屋漏]라 하여 전통적으로는 서북쪽의 구석진 자리로 새기지만 문자적으로는 지붕에서 비새는 곳이다. 방구석[房舊席]의 원조를 찾아가 보려 한다.
『시경』 대아 억(抑)편에 “네가 <홀로> 방에 있음을 살펴보니 오히려 방 귀퉁이 <지붕에서 비새는 곳>에도 부끄럽지 않네[相在爾室 尙不愧于屋漏]”하였다. 『중용』에서는 『시경』을 인용하면서 움직이지 않아도 공경하며, 말하지 않아도 믿는다하며 경계하고 두려워함이 때와 장소와 관계없이 그렇지 않음이 없다하였다. 옥루[屋漏]는 방의 서북쪽으로 가장 어둠침침한 곳이다. 아무도 방안에 없다하더라도 반드시 행동을 삼가서 어두운 구석에서도 부끄러움이 없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방의 구석진 자리는 수양하는 사람의 움직이지 않는 자리이다.
한유는 <송후참모부하중막(送侯參謀赴河中幕)> 시에 “말을 몰아 누구에게 갈 것이며, 누구를 상대로 대화를 나눌 것인가. 옛 자리의 먼지도 애석해서 털지 않고, 대작하던 술동이에는 남은 술만 엉겨있네.[策馬誰何適 晤言誰爲凝 席塵惜不掃 殘罇對空凝]”라고 하였다. 자리의 먼지[席塵]가 그대로 있을 정도로 변함없이 옛날과 같다는 뜻이다. 여기서 구석진[舊席塵]과 방구석진[房舊席塵]이란 말이 생겼다.
오래된 자리의 먼지도 움직이지 않는 진짜 구석진[舊席塵]은 구년면벽(九年面壁)하는 달마대사의 모습이 연상된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방구석에 콕 박혀있다고 ‘방콕’이라 한다. 방의 모퉁이에 부끄럽지 않게 수양하고 있을 것이다.
청도인 김여진(金汝振, 1663~1713)의 호는 상재헌[相在軒]이다. 청주인 정은석(鄭恩錫)이 근장한 행장에 보면 “일찍이 꿈에 낳아준 아버지 석계공 김경화(金慶和)을 보았다. 공이 방구석[屋漏]을 손가락질하면서 경계하게 하였다. 이에 그 방을 상재헌이라 편액하였다.”했다. “네가 방에 홀로 있는 것을 살펴보면[相在爾室]”으로 아호를 하였으며 『시경』의 기욱[淇澳], 빈지초연[賓之初筵], 억[抑]의 시문으로 구잠[九箴]을 지어 종신토록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는 경계[弦韋之械]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