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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장재사 이상루(履霜樓)

둔굴재 2023. 7. 19. 10:13

 

 태장재사의 이상루는 안동김씨 태사 김선평의 제사를 받들기 위한 공간으로 회의 및 문중의 중요한 사항을 논의하는 공간이다. 시조가 말없이 보는 곳에서 문중의 대사를 논의하니 엄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상루의 이상(履霜)’이란 서리를 밟으면 추운 겨울이 온 것을 안다는 뜻으로 예기제의에 서리와 이슬이 내린 곳을 군자가 밟고 가면 반드시 처창한 마음이 들게 마련인데, 이는 결코 추워서 그런 것이 아니다.라 하였는데, 이는 계절의 변화에 어버이 생각이 나서 그런 것이다. 늦은 가을이 되면 돌아간 부모를 생각하고 제사를 지내는 의미를 말한다.

 옛날의 사람들은 돌아간 조상의 영혼도 자연의 이치와 같이 만물이 죽어가는 서리 내리는 가을의 마지막 절기 상강이면 하늘로 올라가고, 청명이면 모두 돌아온다고 생각하여 10월의 묘사는 한해의 마지막에 전송하는 것과 같이하였다.

 이상루 편액은 김이도(金履度)의 근서로 두인은 시경패풍 종풍(終風)오도 가도 않으니 나의 그리움 그지없네(莫往莫來 悠悠我思)”에서 유유아사(悠悠我思)’이다. 왼쪽 관인은 본관을 안동이라 밝히고 태사청금문곡몽와죽취지손(太師靑侌文谷夢窩竹醉之孫)’이라 하여 안동김씨 태사공의 선비 고조 문곡 김수항, 증조 몽와 김창집, 할아버지 죽취 김제겸의 손자라 밝히고 있다.

 시조 태사공의 재실 누각 이상루 편액을 쓰기 위하여 두인 유유아사(悠悠我思)’태사청금문곡몽와죽취지손인장을 특별이 마련한 듯하다. 조상의 아호를 각인하였으니 다른 곳에는 사용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이상루 편액을 쓴 김이도는 남원부사 여락헌 김탄행의 아들로 ()’자가 항렬자이다. 신발 ()’서리를 밟는다는 뜻이지만, ‘조상를 따라 간다는 뜻이 강하다. ‘()’자가 이름자에 있는 후손이 ()’자가 들어가는 누각 이름을 지어 편액을 쓰고 선조의 아호로 후손임을 밝히고 있다.

 시조단 아래 후손들이 모이는 누각 편액을 쓸 자손 하나는 반드시 있을 것이란 생각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안동김씨 태사공의 후손은 이 이상루에 오르면 먼 조상의 덕을 추모하고 제사에 정성을 다 하여야 할 것이다.

 

이상루에는 세월이 무거워 낡은 북 하나가 걸려있다. 시조단 제사의 엄중함을 알리는 상징적인 북으로 엄고(嚴鼓)’라 한다. 원래는 궁중의례나 종묘제례에서 임금이 거동할 때 북을 쳐서 알리는 세 번의 '()'이 있었다. 이것이 울리면 임금과 문무백관은 근정전이나 지정된 장소에 나가 모든 의식 준비를 완전히 끝낸다. 초엄에는 정돈하고, 이엄에는 무기를 갖추고, 삼엄에는 행군을 시작한다.  

 “제사에서는 엄숙함을 극진히 하다”하였다. 제사의례는 장엄하고 정숙하여야 한다. 조상신을 만나는 자리에서 웃음을 보이거나 잡담을 해서는 안 된다. 오직 공경을 다 할 뿐이다. 침묵하는 것이 최고의 예절이다.

 

 고려국의 삼한벽상 삼중대광 아보 공신 태사공의 제례는 고려국의 공신으로서 임금의 제례에 준하여 준비하고 행하여야 했다. 임금의 제례가 준비되었듯이 태사공의 제례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북을 세 번 울리는 며 삼엄(三嚴)하게하고 제물과 제관은 묘단을 향한다.

 

 병산서원 만대루에도 낡은 엄고가 있는 것을 본적이 있다. 지금의 사람들은 신호용 정도로만 생각하고 이에 대하여 쓰임새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소중하게 관심 갖는 이가 드물어 아쉽다.

 김이도의 자는 계근(季謹), 호는 송원(松園)으로 작품으로 안동김씨 태장재사에 편액 <태장재사>, <이상루>, <천태암><남원부사김탄행묘전비>, <수원부사구수훈묘비명> 등이 남아 있고, 2016년 관련 자료를 충주박물관에 기증하면서 전시를 하면서 <유희한묵> 서첩을 발행하였다. 아울러 백형 김이소가 1791년 중국 사신으로 떠날 때 지인이 써 준 축시와 본인의 시를 정리한 <부연축시>도 발행하였다.

 

 

<이상루> 김이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