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죽기 (養竹記)
- 백거이의 양죽기를 읽고
백거이의 양죽기를 보면 ‘대나무는 현명한 사람과 비슷하여 단단함으로써 덕을 세우고(固以樹德), 곧음으로써 자신의 몸을 서게 하고(直以立身), 비어 있음으로써 도를 체득하고(空以體道), 바름으로써 뜻을 세운다貞以立志’고 하였다. 이에 일찍이 이 글을 읽고 대나무를 좋아하여 대문 밖 울타리에 오죽烏竹을 심었다. 들고 나가면서 대나무의 품성을 닮아가기를 노력하였다.
대나무는 다른 말로는 차군(此)君이라고도 한다. 왕휘지(王徽之)가 일찍기 빈집 가운데 살면서 대나무를 심었다.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다만 휘바람을 불기만 하더니 대나무를 가르키면서 “어찌 하루인들 차군이 없을 수 있겠는가”하고 말하였다. 이로부터 사람들이 대나무를 차군이라 하였다. 속이 비었다고 허중자(虛中子)라고도 한다.
옛 글을 읽어보면 죽취일(竹醉日)에 쓴 것이 많이 있다. 선비로써 대나무의 품성을 사랑하여 날짜도 죽취일로 하였을 것이다 죽취일은 음력으로 5월 13일이다. 이날은 관우(關羽)가 태어 난 날이며, 속설에 이 날 대나무을 옮겨 심으면 잘 산다고 하였으며 죽미일(竹迷日), 죽술일(竹述日)이라고도 한다. 모두 대나무에 미혹하여 대나무에 관한 글을 서술하는 날이다.
오월의 싱그러운 날이면 죽순이 몇 개 올라온다. 아침 기운이 촉촉 할 때을 기다렸다가 비오는 날 한꺼번에 다 자란다. 우후죽순(雨後竹筍)이란 말을 대나무를 키우면서 실감있게 느꼈다.
죽순이 비를 만나 다 자라면 새잎이 나오고 지난해의 댓잎은 떨어진다. 오월의 아침이면 대나무 낙엽을 쓸어 모으고, 댓잎에 떨어지는 비바람 소리를 들으면 낙엽은 가을에만 지는 줄 알았는데 대나무는 오월에 낙엽진다. 늘 푸르게 보이는 것은 새잎이 나고 묵은 잎이 지기 때문이다. 새잎과 묵은 잎이 푸르게 보이기 위한 임무를 교대하는 것이다.
오죽은 첫해에 나온 대는 푸르며 일 년이 지나야 점점 검은 색으로 변한다. 여러 해 묵은 대는 유독 검으며 곶감에 분이 나오듯이 대나무에도 흰 분이 나온다. 모죽(母竹)에서 뿌리로 옮겨 새싹을 튀우며 뿌리는 깊이 내려가지는 않으며 넓게 퍼진다.
바라보는 대나무와 키우는 대나무는 다르다. 이제 곧 여름의 소나기가 오면 댓잎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바람 소리는 자연이 들려주는 음악이다. 대나무 숲에는 늘 서늘한 바람이 불면서 사그락인다. 그래서 대나무로 만든 피리나 퉁소는 가을날에 더 어울린다. 겨울에는 푸른 댓잎 가득히 눈이 쌓여 무너지지 않고 무게를 이기고 있는 것은 설죽도(雪竹圖)를 감상하는 것이다. 오늘도 대나무를 보면서 덕을 단단하게 세우고, 곧음으로 몸을 세우고, 비어 있으면서 도를 체득하고, 뜻을 바르게 세우고자 하며, 속세의 일과 고상한 취향은 어울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대나무를 즐기는 편을 택한다.
己丑年 蕤賓節 竹醉日 屯屈齋에서
대문 입구의 오죽과 문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