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쇄(曝曬)
하(夏)나라를 세운 우(禹)임금이 범람하는 황하의 홍수를 다스릴 때 "퍼붓는 빗물로 목욕을 하고 (沐甚雨), 몰아치는 바람에 머리를 빗으면서 (櫛疾風)" 몸을 돌보지 않고 일에 몰두하였다.
때는 가을 이라 장마는 그치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한낮에는 빛살이 좋으니, 선비는 여름 장마에 눅눅한 책을 말리고(士曝曬), 농부는 곡식을 말리고(農曝曬), 아녀자는 밀린 빨래를 말린다(女曝曬).
조선의 왕조실록과 중요 서적을 보관했던 4대 사고史庫에서도 이즈음이면 포쇄관이 사고의 서적을 점검하고 거풍(擧風)시키던 예문관 검열의 관리가 있었다. 송나라의 가난한 농부는 겨울 동안 움추렸던 봄볕에 등을 쬐면서((負暄) 세상에 이보다 더 따스한 것은 없으리라 생각하고서 이 상쾌한 봄볕의 맛을 나랏님에게 보내드리고 싶어 했다는 고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