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수집하게 된 동기는 인격이 형성되던 젊은 날, 친구 멜키올 김기환의 집에 놀러 갔을 때, 서울의 어느 명문대학에 다니는 그의 형님의 책꽂이에는 영어로 된 원서 책들이 가지런하게 꽃혀 있는 것을 보고 크게 감명 받았다. 또 하나는 대학 1학년 때 교양과목 국어 속에 약간의 논어가 포함되어 이육사의 조카인 것을 자랑으로 여기시던 이동영 교수가 지도하고 있었다.
어느날 교수님은 논어를 강독 중 양복의 속 호주머니에서 <중용> 한권을 꺼내시며 “나는 늘 마음의 지표로 삼는 책을 갖고 다니며 필요할 때마다 읽는다.”하시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나도 그렇게 해 보아야 겠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처음 장서를 생각하고 구입한 책은 대구시청 골목 헌책방에서 1972년 경북인쇄소에서 조판하고 향민사에서 출판한 <논어집주>는 1000원이었고, 1971년<원본대학>은 300원, 1973년<명심보감>은 200원 이었다. 이 책들은 나의 지침서가 되어 세월의 흔적만큼 표지를 한지로 새로하고 늘 가가이 두고 읽고 있다.
1963년 판본으로 펄벅의 ‘살아있는 갈대<The Living Reed>’는 구한말부터 1945년 해방까지 안동김씨 일가의 수난사를 그린 작품으로 1930년대 중국을 그린 ‘대지’ 이래 최고 걸작이라는 평을 얻으며 베스터 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사서 출신인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부인 로라 부시여사의 애장서이기도 하여 소개되었다.
박두진의 <수석열전>. 서정주의 <질마재 신화>.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 홍사용의 <나는 왕이로소이다>. 오일도의 <저녁놀>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이육사시비 건립 위원회 간행본 이육사의 <광야>.
박목월의 <육영수 여사>. 김주영의 <천둥소리>. 김용운의 <고향>. 그리고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던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정윤목의 <청풍자집>, 이자의 <음애집> , 김상용의 <선원집>, 임숙영의 <소암집>, 김상헌의 <청음집>
송판본<논어>, <태현경>, <남명송증도가>, <산해경>, <묵자>, <검남시고>
<도아>, <난혜동심록>, <백향산시집>, <이태백집>, <도연명집>
낙파유고와 유계안
책 수집 30여 년 동안 남의 가문의 책을 수없이 보고 읽으면서, ‘우리 집에는 왜 책이 없을 까?’ 하는 마음이 가슴 속에는 의문으로 남아 있던 2009년 2월 1일 낙파정 중수 현판 제작과 기념식의 일을 집안의 어른들과 상의 하는 과정에 말로만 전해지던 <낙파공(金龍漢) 유고>가 수일 형님의 서재에서 발견되었다.
공의 유고는 여력에 지은 시율이 상당히 많았으나 임종하는 날 그 유고를 태워 버리라 명하거늘 그때 곁에 있던 지친이 한권을 보관 해 두어 서문만 붙인 채 발간하지 않고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고 했던 그 유고이다.
유고에는 사상 팔경시와 낙파정 유계안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낙성식에 맞추어 현판 제작을 새로 시작하기도 했다. 남의 좋은 글 백 번 읽어도 우리 선조 글보다 못하고, 남의 좋은 책 보다 우리 조상의 책보다 못하다.
봉와공유고와 유계안
낙파 선조 유고가 발견되니 효자 할아버지 <봉와공(金濟均)의 실기>와 <유계안>이 학년 종숙이 보여주면서 번역을 부탁하였다. 낙파 선조 유고와 봉와공 실기는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출판될 날을 기다린다.
고서 수집 30년에 이제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선조의 유고와 실기, 그리고 가사집이 발견되어 모두 나에게 왔으니.다만 아들 손자 며느리에게 이어서 책을 수집하고 읽으며 기록으로 남기는 전통을 가졌으면 좋겠다.
교훈가 한양가 외의 가사집 일괄
꿈꾸면 이루진다고 했다. 책 수집에서 고서 수집으로 이어지면서 없는 걸로만 알고 남의 책과 글만 읽고 수집하였는데, 서예를 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이루어 가는 며느리 함창인 경연(庚延) 김점년(金占年)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가사집을 보여주었다. 이젠 이 모든 것이 나의 책무이다. 이것을 어떻게 현대화하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집안과 세상의 후배들에게 먼저 살다 가신 어른들의 삶을 보여 줄 것인가?
김창년(金昶年. 1915~1935)의 자는 영대, 본관은 안동이며 배우자는 단북 신기가 고향이며 청주이씨 봉술(李鳳述. 1913~?1993)로 금쪽 같은 유복자로 아들 원일(源鎰)을 두고 부군이 먼저 저 세상으로 가니 한 많은 인생사를 내방가사 짓는 걸로 평생 업으로 삼으니 그 몇 편이 이것이다. 홀로 살아 가는 그 시어머니 밑에 며느리가 다시 글을 쓰며 홀로 산다.
다인의 문집; 낙파유고, 묵재일고, 남고집, 정산유고, 서암선생문집.
<정산유고>는 수집한지가 오래 되었지만 모르고 미정리 상태로 있었다. 그러든 어느날 정리 과정에서 이 문집은 나의 고향 다인에서 발행된 문집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인 사람의 문집은 태두남의 <서암선생문집>.박사희의<묵재일고>. 김돈의 <동애집>. 박응형의 <남고선생문집>.김용한의 <낙파유고>이다. 이 문집이 없었다면 다인이 어질기만하고 학문이 없으니 얼마나 척박할까? 이 문집들로 책 수집하는 사람의 고향 체면을 살려주었다.
屯屈齋 書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