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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루[屋漏], 방구석[房舊席], 구석진[舊席塵]

‘집구석에 있다’ 또는 ‘방구석에 있다’와 같이 집구석, 방구석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을 가지면서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방구석(房舊席)은 ‘방의 오래된 자리’란 뜻으로 『시경』에서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듯하다. 옥루[屋漏]라 하여 전통적으로는 서북쪽의 구석진 자리로 풀이하지만 문자적으로는 방에서 비새는 곳이다. 방구석[房舊席]의 전고이다. 『시경』 대아 억(抑)편에 “네가 홀로 방에 있음을 살펴보니 오히려 방 귀퉁이 지붕에서 비새는 곳[屋漏]에도 부끄럽지 않네”하였다. 『중용』에서는 『시경』을 인용하면서 움직이지 않아도 공경하며, 말하지 않아도 믿는다하며 경계하고 두려워함이 때와 장소와 관계없이 그렇지 않음이 없다하였다. ‘억(抑)’은 위(衛)나라 무공이 여왕(厲王)을 풍자하고 스..

카테고리 없음 2023.07.07

회우 이충국과 대곡사

이충국(李忠國, 1715~1777)의 자는 효이(孝而), 호는 회우(悔尤). 본관은 진성이다. 고조는 주봉[柱峰] 이래[李崍]이다. 이충국의 이름은 충국[忠國], ‘나라에 충성한다’이다. 왕조시대의 ‘국[國]’은 나라이면서 국가이며 임금이다. 나라에 충성하다보면 가정에 효도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자가 효이[孝而]이다. 충과 효의 조화를 맞춘 것이다. 이름이 부족한 것을 자명[字名]이 보태어주고 이름이 넘치는 것을 자명이 덜어내어 주면서 이름과 자명은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있다. 이충국의 아호 회우[悔尤]는 1838년 류도헌이 찬술한 묘갈명에서 “1767년에 성균관전적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집에 있기를 10년 동안 비록 세상에 도움은 되지 않더라도 뉘우침과 허물의 뜻으로 문미 위에 ‘회우’라고 편액하..

카테고리 없음 2023.06.24

간밤에 별 일 없었는가?

한국 사람은 아침시간에 누구를 만나면 ‘간밤에 별 일 없었는가’하고 인사 했었다. 이런 인사의 시작은 상나라 갑골문에 보인다. 상나라 민족은 한 달 중에서 열흘 단위로 다음 열흘간의 길흉을 점치는 복순(卜旬)이 행해졌다. 갑골문 시기를 통해 빠짐없이 거행되었다. 복사에는 열흘의 마지막 날 치는 복순(卜旬)과 저녁에 치는 복석(卜夕) 등이 있다. 점을 쳐서 답을 구한다기 보다는 의식에 가까운 것으로 점복행위를 빌어서 부정을 씻어내기 위한 푸닥거리일수도 있다. 밤이 오기 전에 “오늘밤 별 일 없는가(今夕亡尤)”하고 편안한 밤을 바라며 점을 친다. 위험을 수반하는 전쟁이나 사냥을 할 때는 물론이고 평상시의 외출에도 “오고 가는데 재앙이 없는가(往來亡災)”하고 점을 쳤다. 점복은 왕이 주관했으며 길흉을 점친 뒤..

카테고리 없음 2023.05.29

성균관 진사 광산 김공(휘이원) 묘갈명배 의인 의성김씨

소재지: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탁본일시: 2023년 5월 19일 공의 성은 김이요 이름은 이원(以元)으로 초명은 만회(萬會)요 자는 동언(東彦)으로 광산인이다. 신라왕자 흥광(興光)이 시조이다. 그 후 벼슬이 끊어지지 않고 대대로 이어졌다. 전하여 21세 철산(鐵山)께서 조선 태조조 승의랑 사헌부감찰이었으며, 증직으로 순충적덕병의보조공신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부사 광성부원군이다. 이분이 겸광(謙光)을 낳았고 호는 서정(西亭)으로 성종 신묘(1471)에 순성명량좌리공신 정헌대부 의정부 좌참찬 광성부원군에 책봉되었으며 청백리에 뽑혔다. 증직으로 숭정대부 위정부 좌참찬 겸지경연사 세자이사이며, 시호는 공안(恭安)이다. 이분이 극핍(克愊)을 낳았고 문과 급제하여 숭정대부의정부 좌찬성이며, 증직으로 순충보조공신..

카테고리 없음 2023.05.29

공자의 조카 ‘자멸(子蔑)’이 매(蔑)를 맞다.

옛날의 자식 교육은 회초리로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식교육이란 것이 때려서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때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공문제자 72현인 중 말 잘하는 재여(宰予)는 자주 스승의 눈에 거슬렸던 것 같다. 배운 것을 실천하지 않고 낮잠을 자면서 언변에만 능한 재여에게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고, 더러운 흙으로 쌓은 담장에는 흙손질을 할 수 없다. 너에 대해 내가 무엇을 탓하겠느냐?” 하였고, “처음에 나는 사람을 대할 때 그의 말을 듣고 그의 행동을 믿게 되었는데, 지금 나는 사람을 대할 때 그 말을 듣고도 그 행동을 살피게 되었다. 재여에 대해서도 이처럼 바뀌었다.”하였다. 재여는 3년 상이 너무 길다고 했다가 꾸중을 듣기도 한다. 그러고도 자공과 함께 언변에 능하였고 외..

카테고리 없음 2023.05.28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

소재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288 규격: 63⨯123⨯26Cm 탁본일시: 2022년 5월 24일 퇴계 선생의 산소는 퇴계 종가에서 멀리 않는 거리에 있다. 선생의 평소성품처럼 요란하지 않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어서 누구나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곳이다. 계단 몇 개를 오르면 소나무가 주위를 둘러 있다. 비석은 큰 학자에게 알맞은 크기의 비석이다. 퇴계 선생에게는 비석 큰 것이 높은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 높은 것이다. 2002년에 도산서원 재유사로 소임을 맡은 적이 있는 본인으로서는 오늘 비석을 탁본하는 것은 누구보다 감회가 깊다. 먼저 선생의 몸을 만지듯이 먼지를 털어내고 물로 씻고 수건으로 닦아낸다. 다행이 이끼는 없어서 청소할 것은 많지 않았다. 한지를 붙이고 선생의 말씀을 한점한점 옮긴..

카테고리 없음 2022.09.14

반드시 예[禮]를 다한다.

『예기』 옥조편과 『소학』 명륜편에 “아버지가 사람을 시켜 자식을 부를 때에는 자식은 유(唯)할 뿐 낙(諾)해서는 안 된다. 만일 손에 일을 잡고 있을 때에는 일을 내던지고, 식사 중일 때에는 음식을 뱉고 간다. 그때 급히 달려가야 하며 종종걸음으로 가서는 안 된다. 또 어버이가 늙으면 외출한 후 목적지를 바꾸지 않고, 돌아오는 시간이 늦지 않도록 한다. 또 어버이가 병으로 앓고 있는 동안은 자식은 얼굴에 우수의 빛을 떠나지 않는다. 이상은 효자가 항상 마음 속에 지니고 있어야 할 소략한 예절이다.”하였다. 이 문장의 마지막에서 “이것이 효자의 소략한 예절이다(此孝子之疏節也)”하였다. 여기서 예절(節)이 오늘날 한국 사람이 대답으로 사용하는 ‘예(禮)’이다. ‘예’는 대답하는 예(禮)에 맞게 대답하는 것..

카테고리 없음 2022.08.26

안동김씨의 전가보물 ‘소(素)’

안동김씨가 처음 터를 잡은 곳은 태사공 이후 안동부내 수남 강정촌(江亭村)이다. 지금의 귀래정 자리로 추정한다. 그 후 풍산현 불정촌(佛頂村)에 옮겨 살았다. 지금의 풍산현 시장 오른쪽 수곡이다. 지금의 소산 마을에 정착하게된 것은 비안현감 김삼근(金三近, 1419~1465)이 둘째 아들 김계행(1430~1517)이 출생한 이후에 옮겨와 살면서 김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금산촌(金山村)이라고 하였다. 이 때에 돈소당이란 당호도 사용하게 되었다. 돈소당 뒷산은 표고 100m 정도의 구릉으로 금산(金山)으로 불리어졌으나, 청음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이 병자호란으로 낙향하여 “김가(金哥)가 사는 곳을 금산이라 하면 이는 너무 화려하고 사치스럽다. 모름지기 검소하다는 소산(素山)으..

카테고리 없음 2022.08.26